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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마루 사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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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 꼭 56년만에 한국인 유족들이 일부승소를 거둔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사건은 해방 직후 귀국길에 올랐던 한국인 징병,징용자들이 폭발사고로 인해 교토(京都) 부근 마이쓰루(無鶴)항 부근에서 수장(水葬)된 대형참사이다.

이 사건은 태평양전쟁 직후인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靑森)현 군사시설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을 태우고 한국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마루가 24일 오후 5시20분 마이쓰루항에 입항하려는 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침몰한 사건이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놓고 한국과 일본은 침몰원인, 희생자 및 승선자 수 등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제기, 그간 미스터리 속에서 사건해결의 향배에 관심이 쏠려왔다.

우키시마마루의 침몰원인을 놓고 일본측은 미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機雷)에 의한 것이라며 당시 상황이 '불가항력적'이었음을 강변해 왔다.

반면 한국인 유족들은 문제의 수송선에 동승했던 일본인 승선원들이 패전 후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해 의도적으로 배를 폭파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희생자수에 대해서도 한국측은 5천여명에 달한다고 '증언'했으나, 일본측은 이번 교토(京都)지방법원의 판결문에서도 적시했듯이 한국인 524명, 일본 승조원 25명등 55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옛 일본군 자료에 따르면 당시 우키시마마루에는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이 3천700여명과 일본인 승조원 등 모두 4천여명이 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시 귀국선을 타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실제 승선자는 7천여명에 달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침몰 선체는 사건발생 9년 후에 인양됐으며, 닫혀진 선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유족들은 물론 북한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북한은 지난해 이 사건을 다룬 '살아있는 영혼들'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됐던 조선인들이 징용생활의 한(恨)을 접고 귀국의 꿈을 안은 채 우키시마마루에 승선했다가 폭발사고로 대부분 사망한 비극적 내용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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