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8월과 동북아의 미래

필자가 10여 년 전 영국 유학당시 잠시 영국인 집에 하숙하고 있었는데 하숙집을 청소하러온 파출부가 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불교의 만(卍)자 목거리를 보고 내가 나치의 추종자이기 때문에 나의 방을 청소할 수 없다고 주인에게 통보한 일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독일사람들은 성냥 하나를 켜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기를 기다릴 만큼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한 국민으로 높이 평가하는 등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나치 독일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었으나, 유럽 사람들의 나치 독일에 대한 증오와 경계심이 현실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체감하였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고통받았던 유럽은 오랜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유럽 연합을 결성하고 통합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유럽연합의 결성 과정에서 2차 대전의 가해국인 독일의 콜수상이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독일 콜수상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바 있었던 프랑스의 미테랑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유럽연합을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 밖의 유럽 여러 국가들이 적극 찬동하면서 참여하였다.

유럽연합 결성이 성공한 주요한 요인으로 유럽이 날로 막강해져 가는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대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럽 각국이 뭉쳐야한다는 명제에 동의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간의 신뢰 없이는 유럽 통합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2차대전의 가해국인 독일이 유럽 각국의 신뢰를 얻은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독일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전범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행동과 실천으로 전세계 보여 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재단을 설립하여 전세계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독재 정권 당시 독일의 재단은 민주화를 추구하는 단체와 개인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시민단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지역 국가간의 블록화는 미국의 막강한 경제적, 군사적 힘에 대항하여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등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같은 한자 문화권인 한국, 북한, 일본, 중국이 함께 협력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블록화를 꿈꾸고 추진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상 우리는 중국과는 물론이거니와 일본과도 역사적으로 서로 증오하고 싸웠던 기간보다 평화적으로 협력하였던 기간이 훨씬 길다. 남북한, 일본, 중국이 서로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협력하는 길이 동북아의 번영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런데도 동북아시아 각국은 올 8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비판하고 걱정하면서 보내고 있다. 일본인들이 10여 년 간 계속되고 있는 불황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군국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되살리려고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 바로 경제적인 번영을 위해서도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여야한다. 과거에 대한 속죄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과 같지는 않더라도 동북아 국가들간의 경제적인 결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올 8월은 이웃 나라 뿐 아니라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비극적이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는 모처럼 우리 나라와 일본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 나가는 화해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왔으나 그러한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한편 근검절약과 부지런함으로서가 아니라 진솔하게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반듯한 독일과 그 국민들을 다시금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김경애(동덕여대교수·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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