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가 발굴됐을 때 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 향로가 고대인들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알려줄 수 있는 유물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학계에서는 향로가 고대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초특급 국보라고 말하면서도 별다른 연구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누가·왜·언제 만들었는지, 그리고 유물에 형상화 된 수많은 인물상·동물상·식물상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속시원한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한 재야 사학자가 향로에 담긴 고대문화의 다양한 징표들을 읽어냈다.
한국고대문화사 연구가인 서정록씨는 '백제금동대향로'(도서출판 학고재)란 저서에서 향로가 백제인들 뿐만 아니라 고대 동북아인들의 세계관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만큼 문화적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것은 520년대 후반에서 530년대 전반기 백제 성왕 때 사비천도를 준비하면서 사비의 신궁(神宮)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향로가 발굴된 능산리 유적 또한 본래 사비의 신궁이 있던 자리로 추측된다는 것. 즉 백제대향로는 백제왕실의 건방지신을 위시한 조상신들과 각종 신령들을 모시는데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백제대향로의 세부양식은 서역의 요소들을 채용한 북위 향로의 영향을 받았다며 산악도와 수렵도는 서역과 북방의 수렵문화를, 5악사와 5기러기는 고대 동북아의 전통적인 정치체제인 5부체제를, 노신의 연꽃은 고대 동이계 광휘의 연꽃과 연화도의 주제를, 용은 수신(水神)으로 천상의 연못과 지상의 연지 사이를 순환하는 존재를, 테두리의 유운문과 각종 인물상·동물상 등은 고구려 고분의 인물·신령들과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파격적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도 샤머니즘이 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남만주 일대를 누비던 우리 조상들이 실크로드 이전에 이미 서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는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국의 한족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여겨왔던 우리 역사를 이른바 '오랑캐의 역사'(서역과 북방의 역사)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보아야 고대사의 진면목이 잡힌다는 주장이다. 고대사 연구가 풍성하지 못한 우리 학계에 보기드문 쾌거가 아닐까.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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