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나무이고 싶었습니다.당신의 넓은 잎 그늘에서 쉬고 싶었습니다.

당신처럼 세상을 향해 꼿꼿해지고 싶었습니다.

여린 새순, 때때로 피어나는 꽃들에

마음이 오래 머물곤 했습니다.

그러나 옷 갈아입는 저 나무들이 마치

순간순간 말바꾸고, 얼굴 바꾸는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햇습니다.

캐나다에서 였나봅니다.

침엽수림이 초록의 융단같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 하고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먼저

하얗게 서서 죽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내가 한 발 내 딛을 때 누군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 당신을 내려 놓습니다.

저 푸른 잎들이 팔 뻗어옵니다. 그래

저 무성한 숲이 수상합니다.

-박지영 '숲은 수상하다'

※시적 화자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봄의 초록이 가을의 단풍으로 바뀌는 것이 마치 사내의 변심같아 마음이 어두워진다. 이런 마음은 캐나다라는 바뀐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초록의 생명체를 보고 달려가자 이번에는 하얗게 말라죽은 고사목이 화자의 발길을 잡고 만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숲이 수상한 것이다. 이 시에서 나무나 숲을 말그대로 숲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인이 추구하는 이데아나 절대자가 나무라는 시적 의장을 걸치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진리는 원래 불안한 법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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