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대게' 원조 마을인 영덕군 축산면 경정2리에 도착한 것은 아침 6시를 조금 넘어서였다. 대(代)를 이어'영덕대게'를 잡는 어부 김복동(58)씨와 아들 종임(31)씨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김씨의 사전 허락하에 김씨의 대게잡이 배'태백호'를 함께 타고 출항키로 되어 있었다. 그전에도 두차례나 밤잠을 설치고 이곳까지 왔었지만 기상 악화로 출항치 못해 세번째의 도전이었다. 일주일 전은 먼바다(대게 그물 쳐 둔 곳, 항구에서 배로 40분~1시간 거리)에 예비 폭풍주의보가 새벽에 갑자기 내려졌고, 또 한번은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었지만 먼바다에 파도가 출항이 어려웠기 때문. 두번이나 허탕친 관계로 경정리로 새벽 차를 몰면서 출항할 수 있을지 가슴을 졸였다. 새벽 4시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해경 어선통제소에 전화를 했다. 출항할 수 있다는 말에 다소 위안은 되었지만 "겨울 바다 날씨는 워낙 변덕이 심해서…"라고 한 전날 김씨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경정리에 도착하자 마자 종임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기상을 보니 오늘은 출항할 수 있겠다"며 "옷은 두껍게 입고 왔느냐"고 걱정했다. 이날 아침 이곳 바닷가 기온은 영하 3, 4도는 될 성 싶었다. 하지만 겨울철 먼바다는 바람이 크게 불지 않더라도 4, 5도는 더 떨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 조금후 아버지 김씨와 막내 외삼촌인 유선일(33)씨가 밖으로 나왔다. 이곳이 고향인 유씨는 울산 등 객지에서 몇년간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얼마전 돌아와 함께 배를 타고 있다. 대게잡이 나갈 때는 항상 3명이 함께 나간다. 종임씨는 검정 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치고 군에 갔다 제대 한 후 2년간 화물차 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수입도 시원찮고 적성에도 맞지 않아 97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배타는 게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내 일 이니까 보람도 있고, 운전보다는 벌이도 낫지요. 고조할아버지때부터 이 마을에서 대대로 어부로 살아왔으니까 저도 대를 이어 어부로 살기로 결심했죠"라며 웃었다. 아들이 배 타겠다고 결심하자 김씨는 지난 97년 빚을 내 지금의 '태백호'(6.1t, 승선정원 9명)를 새로 건조한 후 선장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아내와 둘이서 조그마한 어선(2.4t, 승선정원 2명)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 왔던 것. '태백호'를 건조할 때 진 빚을 해마다 조금씩 갚아 나가지만 아직도 5천여만원이나 남아 있다. 김씨는"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들과 함께 부지런히 배질 해 빚 갚고 조금 더 큰 배를 장만해 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동네 젊은이들이 명절 때 좋은 옷 입고 고향올 때 내 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요.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조상 대를 이어 착실히 배질하는 것을 보면 아들이 장하고 고맙게 느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효자로 소문난 아들 종임씨 역시 "아버지 환갑때까지만 바다에 함께 나가고 그 뒤는 쉬게 하는 게 자식된 도리"라며 아버지를 끔찍히 생각했다.
김씨는 지금 노모(78)와 처, 아들 부부, 손자 둘 등 3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요즘 어촌에선 보기드문 대가족이다. 출어 준비가 끝나고 집에서 가까운'태백호'가 있는 축산항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항구 어판장에는 전날 출어한 오징어, 꽁치 배들이 고기를 하역하느라 분주했다. 유씨가 해경 임검소에 승선자 명단을 제출하고 오자 배는 곧바로 출항했다. 조타실 키를 잡은 종임씨는 물끄러미 오징어배를 바라보며"열심히 해 빚 갚고 오징어 배 한 척이라도 사야지…"하며 말을 흐렸다. 항구를 빠져나온 '태백호'는 15노트의 속력으로 김씨가 쳐놓은 대게 그물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 앞바다는 잔잔했지만 20여분쯤 갔을까 파도가 1, 2m로 다소 높았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부들에게 겨울은 잔혹한 계절임에 틀림 없었다. 김씨는"겨울바다 날씨는 꼭 인생살이 같다"고 웃었다.
어제 아침 그가"저 멀리 구불구불한 것이 파도치는 겁니다. 여기서는 높지않게 보이지만 그곳에는 3, 4m나 됩니다"라고 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조타실에 설치된 GPS(위성항법장치)가 가리키는 항로를 따라 30분만에 그물 친 곳에 다다랐다. GPS 화면에는 위도, 경도, 수심(그물친 곳 수심 216m), 현 위치, 그물친 곳의 좌표, 남은 거리 등이 상세히 나타났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쳐놓은 다섯 틀(한틀의 그물 길이는 약1km)중 오늘 건질 그물의 연두색 부표와 깃발이 보이질 않았다. 보통 한번 출어하면 한틀을 걷고(양망) 한틀을 놓는다(투망). 30여분을 찾았지만 끝내 첫 그물의 부표는 보이지 않았다. 종임씨는 이같은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다. 배들이 지날때 스크루에 감겨 부표를 맨 줄이 끊어질 때가 많지만 더러는 고의적으로 남의 부표 줄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 즉 대게 어획량이 갈수록 줄어들자 목 좋은 곳에 그물을 놓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 결국 열흘 전에 쳐 둔 첫번째 틀(그물)을 찾지 못해 일주일 전에 쳐 둔 두번째 틀을 걷어 올리기로 했다. 그물 올릴때는 종임씨가 조타실에서 나와 양망기에 그물을 걸어 당기고 아버지와 외삼촌은 그물에 걸린 대게를 조심스럽게 벗겨내 바닷물을 채운 큰 고무통에 넣었다. 산 채로 상하지 않게 갖고와 집에 있는 수족관에 넣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밧줄을 걷어 올린 후 그물을 5m 정도 당기니 대게가 올라 오기 시작했다. 온 몸이 그물에 감긴 대게는 모두 살아 있었다. 김씨는"그물에 걸려 한달 정도 있어도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속해 대게가 올라오자 김씨와 유씨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대게외에 대구·참가자미·물곰·고동 등 잡어와 어획이 금지된 빵게(어미 대게)도 가끔씩 올라왔다. 대게에 비해 크기가 작은 빵게는 다시 바다에 던져졌다. 김씨는 대게 보존을 위해서는 포획시기 조정(체포기간 11월1일~다음해 5월말)과 빵게 보호가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말했다. 즉 11월 대게는 살이 완전히 차지 않아 상품 가치가 없는 만큼 대게 포획기간을 최소 한달 정도는 늦춰야 한다는 것. 사실 이곳 어민들은 올해 처음 자원 보존을 위해 스스로 한달 늦춰 12월1일부터 대게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씨는"우리만 애쓰면 뭐 합니까. 포항. 울진 등 다른 지역 배들이 와서 11월부터 대게를 잡아가고 있다"며 울분을 떠뜨렸다.
30여분 그물을 당겼을까, 100여마리가 올라왔다. 대게를 벗겨내는 김씨에게 "이정도면 많이 잡힌 편"이냐고 묻자 "괜찮은 편이지만 아주 많이 잡힌 것은 아니다"고 했다. 기자도 난생 처음 그물에 걸린 대게를 벗겨 보았지만 작업이 쉽지 않았다. 어떤 놈은 집게로 손을 물기도 했다. 옆에 있던 유씨가 그물에 감겨 있는 대게를 몸통부터 벗겨 내면 쉽다고 해 따라 하니 다소 쉬웠다.
그물에 걸린 대게는 집게로 그물을 끊어 버리지만 몸부림 치는 관계로 그물에 온 몸이 감겨 달아나지 못했다. 이때문에 대게 잡이는 그물을 두번 정도 사용하면 새 그물로 바꾸거나 그물코를 다시 꿰매야 한다. 종임씨는 "날씨가 추울 때 작업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물에 걸린 대게가 스스로 자신의 발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죠"라고 일러줬다. 대게가 바다 귀족이자 굉장히 예민한 어족임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대목.
파도로 배의 울렁거림이 심해 속이 메스꺼웠다. 한시간 정도 지나니 한틀의 그물이 모두 올라왔다. 고무통에 담긴 대게는 대략 200여마리. 큰 것은 15cm(게 몸통에 붙은 뚜껑 기준) 정도되었고 대부분은 10cm 안팎이었다. 이날 벌이는 대략 200여만원 정도였지만 그물값·기름값·인건비 등을 제하면 그리 큰 수입은 아니라는 게 김씨의 설명.
일주일만의 출항이지만 작업은 그런대로 평소 수준은 되었다. 종임씨는 다시 조타실로 가 키를 잡았다. 김씨가 건져 올린 그물을 손질하는 사이 처남은 싣고 온 그물 한 틀을 재빨리 바닷속으로 던졌다. 투망할 때는 날이 밝아야 남의 그물을 비켜 그물을 놓을 수 있다. 물위에 뜬 흰부표에는'태백호'라고 적혀 있었다.
종임씨는 외삼촌이 싣고 간 그물을 투망하자 20여분을 기다린 뒤 GPS에 부표의 좌표를 찍었다. 투망한 그물이 물결에 따라 움직이다 바닷 밑바닥에 고정되려면 30여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 '태백호'는 오전11시쯤 작업을 마치고 귀항하기 시작했다. 파도가 작업 전보다 훨씬 높았다. 종임씨는 오늘 오후에 다시 예비 폭풍주위보가 내려 진다며 걱정했다. 30분 후 잡은 대게를 집까지 운반하기 쉽도록 마을 앞 경정2리 어항에 도착했다. 김씨의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대게를 집으로 옮긴 종임씨와 외삼촌은 식사도 하지 않고 축산항으로 갔다. 배 수리와 그물 손질을 위해서였다. 김씨는 기자들에게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며 집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대게 그물에 올라온 잡어로 요리된 매운탕과 자연산 회 맛은 일품이었다. 새해 소망을 묻는 기자에게 김씨는"배질하는 나에게 새해라고 해 특별한 게 있나요. 가족들 별탈없이 고기들만 좀 많이 잡혔으면 좋겠지…"라며 가볍게 웃어보인다.
영덕·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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