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매일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빛 지렁이-김수진

김산부인과를 나오자 눈에 띈 것은 이발소의 사인보드였다. 원통 안에서 구불구불 도는 청색과 적색 기둥은 내 몸 속의 혈관을 확대시켜 보는 듯 했다.

사인보드의 일정한 속도를 보고 있자니 몸 속의 피가 한없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어질머리가 났다. 욕지기가 나서 바닥에 침을 뱉으려는데 이발소 앞에 살집 좋은 개들이 흘레 붙고 있었다.

암캐 등에 올라탄 수캐의 실한 뒷다리 뒤에는 또 다른 암캐가 꼬리초리를 바싹 말고서 허둥거렸다.

그때, 이발소 대나무 발이 확 제쳐지며 '개새끼들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새된 목소리의 남자가 찬물 한바가지를 끼얹었다. 난데없는 물세례에 다리가 꺾인 개들이 몽롱한 표정으로 후다닥 흩어졌다.

간호사가 건네준 처방전으로 약을 사야 했으나 아침부터 재수 없다던 새된 목소리가 귓등에 걸려 버스승강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금세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 한편이 검게 물들고 있어서 재게 걸었지만 발끝의 신경이 자꾸 흩어졌다. 바람이 건 듯 불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베개가 높아서 뒤로 밀려나던 김산부인과의 온돌방이 떠올랐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신음소리에 눈을 떴을 때 옆에 누운 여자는 새우등을 하고서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여자의 동그랗게 말린 몸체는 알맹이를 빼낸 소라껍질 같았다. 코끝과 목덜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가는 비가 내렸다.

빨려고 챙겨온 작업복을 가방에서 꺼내 머리에 썼다. 오늘 아침, 야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통근버스에서 내가 내려야 할 대한 통운 앞을 지나치자 점순 아줌마가 내리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한 뒤 세 정거장을 지나 퇴미 삼거리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롯데리아와 이발소를 지나 김산부인과에 닿았을 때는 아침 아홉시 십오분이었다. 오동빛 유리문을 열려다가 평일 진료시간이 아홉시 삼십 분인 것을 보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진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미세한 진통이 느껴졌지만 뱃속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끔찍스러워 날이 선 주먹으로 배를 두들겼다.

머리를 갈라 붙여 가르마를 낸 간호사는 마지막 생리날짜를 적더니 임신테스트를 해보았는가 물었다. 나는 간호사 귓불에 달라붙은 십자가 귀고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종이컵에 오줌을 받으러 가면서 혹여 생리불순이라는 진단이 나오길 바랐다.

"태아가 잘 들어앉았네요".

젊은 의사는 거뭇거뭇한 초음파 화면을 쳐다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생리주기가 늦어지고 자동판매기 호박죽이 입에 단 것이 미심스러웠지만 고된 특근 때문 일거라고 자위했었다. 또 임신이라니……의사가 분만 예정일이 내년 삼월이라고 말할 때 나는 잎 끝이 타 들어가는 창가의 행운목을 바라보았다.

"수술하겠어요".

"그러시다면, 수술은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돼요".

의사의 명료한 대답에 양송이 버섯 같은 것이 내 것이라고 찍어 놓은 초음파 사진을 볼 때부터 생긴 희미한 죄의식도 흐지부지 사라졌다. 손과 발이 가죽벨트로 묶여지고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분주할 때 아랫배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냄새만 맡아도 역겹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겠지, 나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

벌린 다리 위에 쳐진 커튼 너머로 의사의 실루엣이 보였다. 의사와 간호사의 말소리가 아기 옹아리처럼 들리면서 내 몸은 흐리멍덩한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에스케이 텔레콤 진열대에 걸린 원목시계의 시계침은 열두시 삼십오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나울거리고 성근 비가 도시를 적셨다. 비를 피해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라디오 방송 새벽 뉴스의 기상 캐스터는 날씨가 연일 흐리다가 내주 초쯤 비 소식이 있다고 했다. 반장 눈을 피해 자동판매기에서 호박죽을 빼 마실 때도 밤하늘의 별무리를 보며 날씨가 화창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비가 내린다.

버스에서 내려 신문을 뒤집어쓰고 뛰어가는 사람들도 일기예보를 믿고 나왔을 것이다.

날씨가 일기예보를 따르지 않듯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꿈꿔 오던 삶은, 아파트 창가 한편에 앤틱 촛대로 장식한 테이블을 놓고 필통이나 편지지, 화장품케이스 따위의 팬시 용품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장에서 하루 수천 개씩 분유 캡에 튀어나온 꼭지를 따며 개미굴 같은 지하 방에 살고 있다. 엄마에게 몽키바나나와 가래떡을 사주면서 이 고장을 떠나게 했던 일 말고는 삶은 언제나 내 바람을 외면했다.

공중전화 부스에 매달린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아 냈다. 마음에 돋은 물집도 이렇듯 쉽게 지워졌다면 옹골찬 배추 속 같은 삶을 살았을까.

유리에 서린 김이 하얘질수록 보이지 않는 열선에 묶인 듯 몸이 뜨거워졌다.

이따금 팬티에 부착한 대형 패드에 분비물이 흘렀다. 격한 풍랑에 시달린 자궁이 아물 때까지 패드에 묻어 날 분비물은 거뭇거뭇하던 초음파 사진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수술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따라 빈 자궁에 신경이 쓰였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버팔로처럼 질주해온 버스가 사람들을 삼키고 가면 텅 빈 자리에 빗물만 어룽졌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겠지, 비에 젖은 우산을 햇빛에 말려 우산 꽂이에 챙겨 놓는 사람이 있는 집은 따뜻할 것이다. 유리에 '집'이라고 썼다.진하게 서린 김 때문에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집' 옆에 '따뜻한'을 썼다. 유리에 '따뜻한 집'이라고 쓰고 나니 우산 꽂이가 있는 따뜻한 집이 그리워졌다. 부스 안에 서 있기가 피로했으나 뱀 구멍 속처럼 어웅한 지하 방으로 구겨들기는 싫었다.

더군다나 노인네의 군소리를 감당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쯤 노인네는 동네 땅을 이 잡듯 뒤지며 지렁이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내가 벌어 오는 돈으로 낡은 목욕타월처럼 흐물흐물한 배를 채우며 노인네가 하는 일이라곤 지렁이를 잡는 일 뿐이었다.

"지링이가 몸에 최고라능만".

분명 경로당 노인들이 흘렸을 말을 되새김하며 노인네는 지렁이 잡기에 몰두했다. 빈 분유통에 철사로 손잡이를 매달아 지렁이 통을 만들고 휴대용 삽을 샀다. 빨래를 널다가 허리를 삐끗한 후부터 노인네는 몸을 사렸다.

파스를 붙이고 나서 걸음걸이가 예전 같은 걸 보면 별 탈이 없는 듯 한데 노인네는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에구구 소리를 과장되게 흘렸다.

"할망구 뼈가 뼈간디. 삭정이지. 드러눕는거 잠꽈ㄴ여. 보약 한 접 해줄라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밥이 보약예요, 엇대어 말하면 노인네는 자기 먹던 밥을 내 국 그릇에 쏟아 붓고 앵돌아져 나갔다. 노인네가 사나운 암고양이처럼 건강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근 사 년 동안 방에만 누워 있다가 죽은 아들의 환영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분유통에 지렁이 수가 시원찮은 것을 보면 지렁이 잡기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동네 땅을 더듬거릴 테고 그것을 모아 탕을 끓이는데는 보름정도의 터울이 있었다. 노인네가 혀를 빼물고 지렁이를 다룰 때면 껍데기만 남은 늙은이가 오래 살려고 안달하는 것 같아 추악해 보였다. 한 손에 호수를 쥐고 채반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김치 버무리듯 뒤적일 때면 노인네의 갈퀴 같은 손에서 버둥거리는 것이 엄마처럼 보였다.

"날마다 무슨 짓예요. 다 태워 버릴거야".

"배라먹을년, 잡아 주지도 않음서 왜 지랄여. 지링이만도 못한 년아".

방에까지 기어든 지렁이를 보고 악을 쓰면 노인네는 지렁이를 방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소주에 담가 놓은 지렁이는 노랗게 독을 토해냈다.

바라건대 독이 덜 빠져서 간당간당한 여생에 막이 내리길 소원했으나 아침저녁으로 지렁이 탕을 한 홉씩 마신 노인네는 시시때때로 식탐을 했다. 얼추잡아 백 마리도 안될 지렁이를 끓여 먹었대서 효험을 볼 리가 없을 것인데 노인네는 다리에 힘이 생기고 오줌이 맑아졌다며 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노인네의 강렬한 신념이 내게 전이된 탓인지 주름진 얼굴에 기름기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니 에미가 내 아덜 잡아 먹드만 인자 니가 낼 잡아 먹을라고 그라지? 두고봐. 니 보다 오래 살랑게".

지렁이 탕을 달게 마시고 난 노인네는 혀로 입술을 빨며 입찬소리를 했다. 지렁이가 끓고 있는 양은 솥 앞에서 양손을 포개고 선 노인네는 의식을 치르는 신자처럼 진지해 보였다.

기다리기가 갑갑하든지 가스레인지 불을 키우면 달그락거리는 솥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쏟아져 나왔다.

하얀 김은 붉은 지렁이가 표백된 듯이 보였고 그것은 노랗게 얼룩진 벽과 깨진 자개농 그리고 나의 몸 속에서 영원히 꿈틀거릴 것만 같았다.

공중전화 부스 유리 한 가운데 무심결에 그린 지렁이가 떼지어 있다. 입으로 후 불면 빗물 고인 땅위로 떨어져 기어갈 것 같다. 지렁이 떼 사이에 '노인네' 와 '따뜻한 집' 이 써 있다. 물기가 흘러 내려 형체를 잃은 글씨가 처절하게 보였다. 들고 있던 작업복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밖이 한결 선명하게 보인다. 내 의식 한 켠에 도화라는 이름이 비상신호처럼 깜박인 것은 전화기 옆에 붙어 있는 '도화가든' 스티커 때문이었다.

개업 1주년을 맞아 이십프로 할인된 음식값에 소주 한 병을 서비스로 준다는 내용의 스티커.

활자 사이에 도드라져 있는 이름이 기억 속에서 맴돌았다. 의식 밑바닥에서 가물거리던 얼굴을 떠올리고 하마터면 스티커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를 뻔했다. 허허넓은 바다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내게 그 이름은 구원의 밧줄이었다. 줄담배를 피우다가 내 작업복 안에 있던 휴대폰을 빼서 자기 번호를 남긴 도화, 저장해 놓은 번호는 그대로 있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중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공장의 기계 소리가 밤하늘에 찬란히 돋은 별도 핥아먹을 것 같던 밤, 도화는 휴식 시간이 되면 나를 붙잡고 앉아서 묵은 세월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고아원 원장이 통조림 깡통에 끈을 달아 손목에 걸어주면서 오미자를 따오라고 했다. 깡통을 채우면 십원, 못 채우면 밥을 굶기ㅆ제".

중학교 때까지 살았다는 고아원에서 행동이 굼뜬 도화는 깡통을 못 채워 늘 밥을 굶었단다. 도시에 나와서도 통조림 깡통만 보면 오미자가 생각나 허기가 느껴지더라고 했다. 명절 때 정종 한 병 사들고 찾아갈 피붙이가 있으면 원이 없겠다던 도화였다. 짧았던 그녀와의 추억이 어제런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다섯 대째 지나갔다. 버스가 올 때마다 따뜻한 방이 생각났지만 몸의 완강한 저항에 고개를 돌렸다. 잊혀질 만하면 쏟아지는 분비물이 김산부인과를 생각나게 했다. 뒤로 밀려나던 낡은 베개와 눈뜨자 들어온 노란 링거 병.

홀쭉해진 듯한 아랫배가 반가우면서도 삼계탕이 먹고 싶은 뻔뻔스런 허기에 눈물이 났었다. 도화는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연달아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를 센다. 하나, 둘, 셋……, 여섯 번째 벨소리를 제치고 귀에 익은 사투리가 들려왔다. "장춘랩니더".

저음의 사투리는 분명 도화의 목소리인데 장춘래라고 했다. 전화기를 바꿔 들 때 또 분비물이 나왔다.

"혹시 도화 휴대폰 아닌가요".

"누군교? 아, 니 재순이지. 맞나?"

도화인 것을 확인하자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여태 부스 안에 갇혀 있던 것이 도화 때문인 듯 목소리를 듣고 나니 유리상자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도화가 내게 멀리 있다는 것을 말해주듯 핸드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도화는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으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단어들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화가 끊어지면 어쩐다지, 내가 귀찮아서 전화를 안 받을지도 몰라. 나는 도화의 팔이라도 되는 양 전화선을 꽉 움켜쥐었다.

"야야, 만나서 얘기하자. 내일 일요일 아이가? 여기 온나".

도화는 김제터미널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라는 말이 없었어도 나는 도화가 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그녀가 머물고 있는 도시, 허름한 여인숙에서라도 자고 올 생각이었다. 나는 따뜻한 방이 필요했고 이 도시에는 내 그리움을 채워 줄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스에서 나가자 비가 머츰해졌다. 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나는 득달같이 택시 안에 몸을 앉혔다.

승차권 자동발매기에서 김제행 표를 손에 쥐고 나니 시간이 남았다. 갈 곳이 정해지자 하룻밤 누울 곳을 찾은 행려병자처럼 허기가 느껴졌다. 리어카에서 몽키바나나를 사고 연탄불에 구운 가래떡을 샀다. 칠 년 전 이곳 터미널에서 엄마 손에 쥐어 준 것이 몽키바나나와 가래떡이었다. 어디서나 시선을 붙잡는 이 먹거리와 내 왼팔에 돋아난 사마귀를 볼 때면 엄마는 안개가 되어 나타났다.

안개를 피해 사내들 몸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눅진한 안개뿐이었다. 승차권에 지정된 좌석에 앉아 가래떡을 먹는데 문득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자궁 속에 돋아난 양송이 버섯을 지운 지 얼마나 됐다고 허기를 느끼는가 싶어 먹던 가래떡을 가방 속에 넣었다.

입 속에 덩어리져 있는 가래떡이 소변 볼 때 떨어진 핏덩이 같아 휴지에 뱉었다. 내 몸을 빨아먹으며 숨쉬던 아이를 없애 놓고 배가 고파 가래떡을 먹는 것이 사람이라면 엄마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개찰구에서 훌쩍 떠나지 못하던 엄마가 곧 데리러 오겠다고 뒷다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황달기가 있는 엄마의 눈빛은 푸른 강물에 방생되는 자라처럼 다시는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으리라는 욕망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열두 살 된 나를 데리고 주류회사에서 트럭을 몰던 늙은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절은 안 받는다!"

눈썹이 새까만 새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려다가 할머니의 꼬장꼬장한 목소리에 헉, 숨이 막혔다. 살빛 스타킹을 신은 엄마의 발가락도 잔뜩 오므라들었다. 내가 열여섯 되던 해, 새아버지는 졸사간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새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눕기 전부터 애 딸린 며느리가 눈엣가시였던 할머니는 새아버지의 눈과 귀를 피해서 엄마에게 악악거렸다.

"언놈 가랭이서 굴러 댕기다가 우리 아덜 꼬셨냐. 내 아덜 힘 팽기게 번 돈으루다 밥 못 먹잉게로 저그 노런 통에 니년들 쌀은 따로 팔아야 써".

할머니는 새아버지가 일하러 나가면 엄마를 공사판으로 내몰았는데 뙤약볕에서 힘진 일을 하다온 엄마는 엿가락처럼 늘어져서 돌아왔다. 그렇게 번 돈은 할머니 쌈지로 들어갔고 몇 푼 던져 주는 돈으로 엄마는 노란 플라스틱 통에 우리가 먹을 쌀을 사다 놓았다.

"말해두는디 니 뱃속에서 우리 아덜 씨는 못 키운다".

할머니의 악다구니에 엄마가 가엾다 못해 이제는 나라는 존재가 방바닥에서 옴실거리는 개미만도 못해 보였다. 왜 하필이면 엄마의 자궁에 태어났을까.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나로 인해 엄마의 젊은 자궁이 씨를 틔우지 못한 채 늙어 간다고 생각하면 폭염 속에서도 내 가슴은 선득선득했다. 꽃가마 예식장 앞을 지나가는 장의 버스를 보던 날, 엄마는 공사판에 나가지 않고 반벙어리처럼 더듬거리며 할머니 손에 끌려나갔다.

체육대회에 쓸 응원도구를 만들고 있을 때 엄마는 탱자나무에 매달린 열매보다 더 노란 얼굴을 하고서 대문 앞에 직수굿하게 서 있었다. 먼저 들어온 할머니가 화가 끓어올라 미치겠다는 듯이 바가지에 물을 퍼서 단숨에 마시더니 마지막 한 모금을 엄마 얼굴에 홱 뿌렸다.

"니 뱃속은 안 된다고 혔는디 내 말을 개떡으로 알고 애를 뱃냐?"

할머니가 소리치자 어머니 너무 하세요, 물을 뿌려도 꿈쩍 않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자못 도발적이어서 나는 색색의 도화지며 풀과 가위를 챙겨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천둥 같은 소리가 버성긴 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너무 허신다고? 여편네들 때 밀어 줌서 키운 아덜 홀라당 삼킨 것이 어디서 주둥일 놀리냐. 지운 것도 언놈 새낀 중 알어".

할머니가 씹어 뱉은 말에 엄마는 입을 벌리고 마른 수수깡처럼 서 있었다. 나무에서 그악스럽게 울던 매미도 그 순간만은 입을 다물어 집은 살기 등등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새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가족의 생계는 엄마 몫이 되었다. 어느 날, 식당에 있어야 할 엄마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겨자색 민소매 옷이 엄마의 누렇게 뜬 얼굴과 안 어울렸지만 내 왼팔 겨드랑이에 돋은 사마귀가 엄마 왼팔에도 있는 것을 보자 기분이 좋았다. 시내 버스를 타고 종묘농약사와 양복점을 지나 명도극장 앞에서 내린 엄마는 음악사 뒷골목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산부인과 앞에 섰다.

"엄마, 여기 들어가?"

"오래 걸릴지도 몰라. 책보고 있어".

산부인과 문을 열자 햇빛 속에서 자유롭던 눈이 모래가 들어간 듯 더디게 움직였다. 어디서 죽은 자를 위한 노래가 들리는 것 같고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이 혼령처럼 보였다. 윗입술에 팥 크기만한 점을 달고 있는 간호사가 커튼 쳐진 방으로 엄마를 데려 갔다. 어깨뼈가 불거진 엄마의 축 처진 등판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산부인과 벽에 걸린, 커다란 물방울 속에 평화롭게 떠있는 태아 사진을 보고 있자니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의자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벽에 걸린 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내가 저 안에 있을 적에 엄마와 나는 행복했을까.

잠수함을 타고 태곳적 내가 살았던 곳으로 들어간 듯 몸이 나른해졌다. 배추벌레색 소파에서 눈을 뜨자 엄마는 브래지어 끈이 흘러내린 채 허청거리며 나왔다.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해야한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마른침만 삼키며 브래지어 끈을 올려주었다.

"할머니가 물으면 똥이 안나와서 병원에서 관장했다고 해".

"내가, 엄마가?"

"니가".

해가 찰수록 엄마에 대한 할머니의 광기는 걷잡을 수 없었다. 옥수수 쉰내가 나는 방에서 새아버지는 하반신만이 아닌 머릿속도 썩어 가는 듯 천장의 정방형 무늬를 온종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 얼굴에 저승꽃이 늘어갈 때 엄마는 다이알 비누대신 보디클렌저로 목욕을 했고 얼굴은 홍조를 띠었다. 고등학교 졸업 전날 밤, 동사무소 은행나무 아래서 작달막한 사내와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옥색 원피스가 바람에 날려 남자의 벌린 다리 사이로 감겨들었다. 느릿느릿 엄마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사내의 다정한 손, 순전히 그 손에 믿음이 가서 엄마가 나를 놓기 전에 내가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할머니의 완고하고 폐쇄된 감옥에서 엄마를 탈출시킬 유일한 전사라도 된 듯 들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암낼 풍기는 여잔데 말라비틀어진 서방 물건을 오래도 견뎠지". "남자하고 여관서 나오드랴. 도망친겨".

엄마가 떠난 그 해 한철, 동네에는 장마철 지하실에 찬 습기처럼 꿉꿉하고 퀴퀴한 소문들이 나를 에워쌌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새아버지는 옥수수 쉰내가 나는 방에서 분탕을 치다가 화단에 채송화가 필 무렵 요 위를 분뇨로 뒤발해놓고 숨을 거두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가책 때문에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만 이 고장에서 살기로 하고 흰 머리칼이 성성한 노인네와 함께 지하 방으로 이사를 했다.

마취 기운 탓인지 몸이 졸음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다문다문 들어오는 것은 초록색뿐이었다. 초록의 울울창창한 산을 봤다 싶으면 햇빛에 몸을 굴리는 들판이 보이고 초록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태운 미니 버스가 스쳐갔다. 눈에 졸음을 달고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에 빨간 티셔츠를 입은 소녀가 앉아 있었다. 보색의 효과 때문에 소녀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 깊숙이 몸을 구겨 박은 나와는 달리 소녀는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양촌 휴게소를 지날 즈음 소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고속버스가 추월하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소녀의 살이 내 팔에 닿았다. 그 팔의 체온이 못내 그리워 소녀에게서 내 팔을 떼지 않았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엄마 종아리에 발을 비볐을 때나 공사판에서 돌아온 엄마의 몸에 파스를 붙여 주었을 때처럼 살은 보드랍고 따스했다.

입사동기였던 남자와 공장 휴게실에서 팔씨름을 하다가 따뜻한 손에 정이 들어 함께 여관으로 갔을 때 나는 날이 새도록 남자의 살을 만졌다.

후미진 골목, 간판 귀퉁이에 녹물이 흐르던 산부인과에서 수술시기가 꽉 찬 아이를 지웠을 때도 엄마의 살결만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명절이나 내 생일 때만은 엄마의 보드라운 살을 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가 생일 선물로 뭘 해줄까 물으면 목욕탕에 가자고 해야지.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해 질 때까지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오래도록 엄마의 젖과 늘어진 아랫배를 만지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럴 수만 있다면 목욕탕에서 나오자마자 이별이라 해도 울지 않을 거야, 냄새까지 기억된 살의 감촉만으로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엄마 살에 대한 기억은 점차 소진되었다. 정신을 딴 데 두어 생선조림이 졸아붙듯 가슴이 모짝모짝 타 들어갔다. 나를 지탱해 오던 살의 기억은 아편과 같아서 약물 기운이 떨어지자 육체는 살에 강렬한 집착을 보였다.

나를 찾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절망할 때면 남자와 밤을 보냈다. 살이 그리워 파고든 남자들은 자궁 속에 씨를 떨어뜨린 채 떠나갔고 지우면 다시 돋아나는 양송이 버섯을 산소 벌초하듯 태연하게 없애버렸다.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소녀가 잠에서 깨었다.

잠시 정체되었던 고속도로가 뚫리자 버스는 제 속도를 냈다. 서산으로 기울기 전 온 힘을 다해 빛을 뿜어대는 눈부신 해 때문인지 도로 위의 차들이 느슨하게 달렸고 소녀도 다시 잠이 들었다. 소녀의 살이 팔에 닿으면 나도 깊은 잠에 빠진 시늉을 하면서 살을 비벼댔다.

해걸음이 시작됐건만 김제의 햇빛은 지칠 줄 몰랐다. 하늘 한 가운데가 터진 듯 쏟아지는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손차양을 했다. 도화는 나를 향해 손짓을 여러 번 했다는데도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소녀가 나를 앞질러 뛰어가는 것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도화는 맨 얼굴에 헐렁한 청바지와 크림색 니트 차림이었다. 야간 작업자와 교대를 하자마자 탈의실로 올라가 눈썹을 붙이고 타이트 스커트를 즐겨 입던 도화는 질박한 시골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순아, 참말 오랜만이네. 야봐라, 얼굴이 왜 이렇노. 어디 아프나?"

도화는 대합실 의자에 나를 앉혀 놓고 캔 커피를 빼주며 재빠르게 내 몸을 훑었다. 처음 수술도 아닌데 오늘따라 온종일 가슴이 시렸다. 도화의 말을 듣자마자 또 목이 메였다.

"젊은 아 얼굴이 그게 뭐꼬? 내 큰 언니래도 믿겠다".

내 거푸시한 얼굴을 보며 화를 내는 도화를 보자 뭔가 울컥 솟구치며 명치께에 맺혔다. 춘래라는 이름이 예명인가 물으니 장춘래는 자기의 본명이라고 했다. 매초롬한 외모의 이름이 장춘래였다니, 웃음이 나왔다. 도화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은단을 꺼내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담배끊었어?"

"엉".

"밥보다 맛있다더니 왜".

"그럴 일이 있다. 집에 가서 밥 묵자. 너 줄라꼬 곰탕 끓이놨다. 뼈다귀 피를 쪽 빼야 할낀데 니 올 시간 맞춘다고 그냥 했더니 국물이 시컴터라".도화가 팔을 잡아끌며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도화가 살고 있다는 텃새골까지 택시로 사십 분이 걸린다고 했다. 술집을 전전하며 안 가본 도시가 없어서 뿌리내릴 곳은 새 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지도를 살피다가 김제를 발견했고 텃새골이란 동네 이름이 마음에 쏙 들어와 살게 되었다. 텃새골로 가는 길은 이국적이었다.

자로 잰 듯한 평야에 승용차 두 대가 아슬아슬 비켜 갈 수 있는 흙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평야에 가려진 길을 따라 날쌔게 달리는 우리들은 꼭 두더지가 된 것 같았다. 텃새가 많이 살아서 텃새골이냐 물었더니 새보다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단다. 한 곳에 오래 사는 노인들이야말로 텃새라 할 수 있으니 텃새골이 아니겠냐며 그럴싸한 지명 해석을 했다.

웃고 떠드는 사이 택시는 고갯길을 휘돌아 우리를 텃새골에 내려놓았다. 자기 집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초라하고 허름한 외딴집이 보였다. "빈집을 싸게 얻었는데 이게 내 집이다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와".도화는 대문을 열며 어린애처럼 웃었다. 폐가처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안은 여느 집과 다를 게 없었다. 도화가 바지런을 떨어서 집 꼴을 갖춘 것이려니 생각하자 정감이 느껴졌다.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밥솥에 시간예약을 해뒀는지 방에 밥 냄새가 가득했다. 뜨개질도 하는 모양으로 막 뜨기 시작한 보라색 실에 대바늘이 걸려 있었다.

"배고프제. 빨리 밥 차릴께. 니 이 음악 들어봐. 모차르트야".

피아노 선율이 집안에 잠포록이 내려앉았다. 뼈다귀 피를 안 빼고 끓여서 국물이 거무죽죽한 곰탕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뼈에 붙은 흐무러진 살을 발라먹을 때 임신 중 탱탱하게 불어 있던 가슴에 통증이 왔다.

입덧 때문이기도 했지만 음식물이 들어가면 자궁 속 태아가 비 온 뒤 고사리처럼 쑥쑥 클까 싶어 물 마시는 것도 꺼려했었다. 이제부터는 공장에서 간식으로 나오는 빵과 우유도 꼬박꼬박 챙겨먹으리라 생각했다. 도화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양치질을 하고 나오니 식탁에 불빛이 환했다. 도화는 찻잔을 앞에 놓고 모자를 뜨고 있었다.

도화의 좁은 어깨와 뜨개질하는 손에 불빛이 이슬처럼 자욱했는데 그대로 사진을 찍어 '평온'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그럴싸할 것 같았다. 크리스털 찻잔에는 녹차의 티백이 담겨 있었다. 티백이 불빛을 받으며 서서히 연두색을 풀어냈다.

"뜨개질이 취미야?"

"내 밥벌이"

"모자 떠서 팔아?"

"모자뿐이가. 얼라 옷도 뜬다. 시내에서 보세 옷 띠다가 팔기도 하고".

"오늘 좀 놀랐어".

"나도 가끔씩 놀라구마는 니가 왜 안그랗칸노. 술집 댕기는 줄 알았제. 나, 그 생활 치워 뿌릿다".

도화 말대로 술집 아니면 갈 데가 있겠는가 싶었다. 술집 생활을 청산하려고 입사했다는 도화가 열흘을 못 버티고 나갔을 때 점순 아줌마 패거리들은 나무접시가 놋접시 되겠느냐며 목젖이 훤히 보이게 웃어 제꼈다.

"반장새끼가 오늘밤 만나자 카드라. 시내에 리베라장있나? 그리 오라카든데. 힘도 좆나게 못쓰게 생깃드마는 육갑지랄한다. 내 얼굴에 술집여자라고 써 있드나? 왜 나 갖고 지랄들이고".

머리칼이 옥수수털처럼 가느다란 반장과 분쇄기를 돌리던 외팔이 송씨까지 집적거린다는 말을 듣고 나는 도화보다 더 크게 어설픈 욕을 했었다. 공장 여자들이 입소문으로 돌려세우지만 않았어도 도화는 공장생활을 견뎌냈을지 모른다.

"공장 그만두고 이리로 왔어?"

"아니다. 서울서 가정부 노릇도 했지".

도화는 모자를 뜨다 말고 고개를 뒤로 꺾으며 깔깔거렸다. 술집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주방아줌마 소개로 도화는 이불공장을 경영하는 사장네 가정부로 들어갔다. 젊은 사장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다섯살배기 아들과 살았는데 이재에 밝아 젊은 나이에 성공을 했다. 도화의 월급은 백이십, 술집에 비하면 인색한 보수였어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사장이 좋아하는 담북장을 끓이면서 행복을 느꼈단다.

무엇보다 밤이 되면 도화 젖을 만져야 잠이 드는 아이와 정이 들었다.

"사장이 술집 다닌 걸 알았든기라. 점점 날 대하는 태도가 틀리더라. 빨래 할 때 세제 많이 쓴다고 잔소릴 하지 않나, 전화 요금 나오잖아? 바빠 뒤질라카면서 통화내역서 뽑아다가 내가 쓴 번호에 줄을 치라칸다. 월급도 찔끔찔끔 주고 말이야. 더러바서 몬있갔데. 그날 밤 서울 뜰 생각하고 사장 오길 기다릿다. 일이 잘 될라꼬 술을 먹고 들어온기라. 방에 몰래 들어가서 확 덮쳐 뿌릿지".

"덮치다니".

"얼라 맹길라고. 사장이 머리는 똘똘하거든. 월급을 몬받었지만서도 뱃속 얼라가 그 값어치만 하겠노. 팔주 됐다카드라".

도화는 진하게 우러난 녹차를 마시면서 오디오 볼륨을 키웠다.

"태교 음악은 모차르트가 최고라카데. 나 술, 담배, 안 먹는다. 담배끊는데 억수로 힘들더라".

"나랑 병원 가자".

"병원 가자꼬? 내 아는 년들이 얼라 지워 뿔고 술집에나 나가라 카드니 니도 그 뜻이가?"

도화는 눈을 지릅뜨며 바락 성을 내었다. 나는 도화의 애를 지우게 하는 것이 여기 온 목적인 듯 그녀를 설득하기에 안간힘을 썼다.

"아빠 없는 애를 왜 키워. 남자를 사랑한 것도 아니잖아. 니 인생만 망가져".

"내가 낳고 싶다는데 사랑이 뭐가 중요하노!"

"나중에 고아원에 주느니 지우는 게 현명해".

"고아원은 뒈져도 안 보낸다. 사람들한테 밟히며 살다보니까네 가족이 맹글고 싶더라. 새끼가 지 에미 밟겠나".

도화의 표정은 어떤 힘에 붙잡힌 듯 필사적이었으며 새끼가 지 에미 밟겠느냐는 말로 내 입을 휘갑쳤다. 묽은 어둠 속에 떠 있는 도화는 검을 들고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천왕처럼 보였다. 석가여래를 악귀로부터 지키듯이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려는 악착스러운 본능 앞에서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사천왕 같은 도화를 보며 노인네가 생각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목욕탕 때밀이를 하며 키웠다는 새아버지가 노인네에겐 석가여래였을까.

열두살 된 딸을 데리고 자기 아들과 살겠다고 들어온 엄마가 악귀 같이 보였을지도……. 악귀에게 자식을 빼앗기고 악귀의 자식이 자라 이제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칠까봐 지렁이를 잡아먹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화는 손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 틈 사이로 어둠은 쫓기듯 들어와 집안을 잠식했다. 술에 취한 남자를 덮쳐 자궁에 씨를 받아올 만큼 도화가 간절했던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 때문에 자궁 속에 박힌 씨를 털어내기에 급급했을까. 거실 유리에 석고상처럼 앉아 있는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오래도록 아랫배를 쓰다듬다가 식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텃새골 춘래로 살란다. 여기가 내 고향 같은기 맘이 편해. 얼라 놓을 때 미역 사 갖고 온나. 다음에는 살 좀 찌갔구 와라".

춘래가 심심할 때 읽으라고 사 온 잡지를 받아들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춘래야, 갈 때 택시 타구 가".

나는 만원 짜리 두 장을 춘래 가방에 찔러 넣었다

"인제 춘래라카네. 내 이름이 얼마나 좋은 줄 아나? 봄 '춘' 자에 올 '래', 풀면 봄이 온다야. 얼마나 좋노? 이걸 팽개치고 살았으니 무슨 봄이 왔겠노. 지금부터 내 인생은 꽃 피는 봄인기라. 재순아, 먼 데 단 냉이보담 가까운 쓴 냉이가 낫다카대. 내 걱정말고 힘들면 와라".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 차에 탄 운전기사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차 문을 닫았다. 멀어지는 춘래의 모습에 그 옛날 엄마의 얼굴이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톨게이트도 못 가 상어 떼처럼 몰려든 차들 사이에 끼어 태진아 노랫소리만 흘리고 있었다. 춘래가 사준 잡지책을 펼쳤다. 광고 일색인 잡지를 넘기다가 지렁이를 익살스럽게 그려 놓은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꼬리에 꽃을 달아 놓은 것을 보니 징그럽기만 하던 것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느 환경단체가 자연물의 존재 가치를 옹호한다는 목적 아래 올해는 지렁이를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포식자들을 만족시키거나 식물의 자양분으로 살다가 우리 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선정이유였다. '거친 발길에 차이고 밟혀도, 어둠의 나라 땅 밑에 반듯이 누워……' 지렁이를 찬미하는 노래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별스런 시상식이다 생각하며 멀미가 나서 책을 덮었다.

하늘에 풀 먹인 옥양목처럼 화사한 구름이 길게 떠 있다. 산과 바람, 해와 집, 춘래와 아이, 엄마와 나……. 구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견고하게 이어주는 세상의 끈처럼 보인다. 버스가 속력을 낼 때 길다란 구름도 꿈틀거렸다. 그것이 왕관을 쓰고 꽃을 단 은빛 지렁이처럼 보였다. 잡지를 다시 펼쳤다. 새끼가 에미 밟겠냐던 춘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활자 사이로 쟁쟁하게 들려왔다.

잡지에 그려 있는 지렁이를 쳐다보며 춘래의 둥지는 텃새골 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깃을 내릴 나의 텃새골은 어디일까.

구름이 해답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나는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엄마도 어디선가 단 이슬을 먹으며 텃새로 살고 있다면 내 기억에서 소진된 살의 감촉을 이제부터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고속버스가 도시를 간신히 빠져 나왔다. 햇빛이 배 위에 사선으로 내려앉고 서서히, 자궁 속으로 온기가 스며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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