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명관칼럼-'일왕발언'과 한일관계

지난해 말 일이니까 시간적으로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일본 아키히토 일왕이 68회 생일을 맞아 기자회견에서 한 한일관계 발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는 '반세이 이케이(萬世一系)' 즉 일왕가는 일본역사에서 하나의 혈통으로 연면히 이어져 왔다는 순결주의적 주장에다 사실은 그 속에 백제계의 피가 흘러 들어가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일본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생각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만 예기치 못한 이 발언에 당황한 나머지 한일 양국이 모두 이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셈치고 다소 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많은 분들의 논평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일왕은 지난해 12월 22일에 한 해를 회상하면서 기자들에게 상당히 길게 한일관계에 대하여 언급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것은 '니혼쇼키'(日本書紀, 720년)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했다.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사람들의 열의와 한국사람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진 것은 다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그 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칸무텐노'(桓武天皇, 781~806년 재위)의 생모가 백제 무녕왕의 자손이라고 '쇼쿠니홍키'(續日本紀, 797년)에 기록돼 있어서 그 자신 한국에 대해서 특별한 인연을 느낀다고 했던 것이다.

그는 곧 이어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것을 위해서도 지난날의 문화교류 뿐만 아니라 '유감된 일'이 있었던 과거사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왕의 발언에 누구보다도 '새로운 역사교과서'라는 일본주의적 역사교과서를 추진해 오던 우익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과 함께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던 신문들은 물론, 아사히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 방송이 이 발언에 대해서 침묵했던 것은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익은 일왕주의자로 자임해 왔는데 그 일왕이 직접 이런 발언을 하니까 이를 비판할 수도 없고 그대로 시인할 수도 없어서 난처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몇몇 신문은 그 후에 이 발언을 한국의 신문이 크게 다루었다고 간접적으로 간단히 전하면서 사태를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일왕이 이 시점에서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하는 추측이 얼마동안 무성했다. 그러나 소문을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일본의 매스컴 특히 주간지까지도 침묵으로 시종하고 말았으니 참 기이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수군거리기는 하여도 방송이나 인쇄물 어디에서도 이 이야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들려오는 바에 의하면 일본 고대국가 건설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전해지는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 574~622년)에 대해서도 넌지시 그도 한국계라는 것을 시사하는 방송도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고대일본에 가야인과 가야문화 그리고 백제인과 백제문화가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이미 역사학자들이 밝혀온 사실이지만 일본 우익은 그것을 부인 또는 은폐 축소하려고 해 왔다. 그런데 일왕이 이제 와서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은 일왕 자신의 소신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가을 어떤 기회에 나는 일왕과 왕비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바로 일왕은 나에게 지난해 발언과 똑같이 칸무텐노의 생모가 백제계였다고 말했다.

나는 일왕은 한일 우호관계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러한 관계를 막으려 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우익 세력이고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일본 내에서 자기들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림대 일본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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