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1절이다. 3.1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던 서울의 탑골공원에 얼마 전까지도 걸려 있던 '삼일문'이란 현판이 친일파 박정희의 글씨라 하여 '민족정기 소생회'에 의해 떼어진 뒤, 빈 채로 남아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며칠 전 TV 뉴스에서는서울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일본인 방문객은 많은데, 정작 한국인의 발길은 뜸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안중근기념관 앞에는 박정희가쓴 '민족정기' 운운하는 글씨가 새겨진 돌이 있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 그래도 뜻 있는 애국자들이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명예와 재산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치고 있을 때, 독립운동은커녕 우리 독립군을 토벌하는 부대의 일본군 장교로서 일본 천황에 충성을맹세했던 다까끼 마사오(박정희의 일본명)가 나중에 탑골공원과 안중근 기념관에 '민족정기'란 글씨를 남기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이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국회의원 29명이 참여한 '민족정기를 세우는 모임'에서 발표한 708명의 친일파 명단이 보도되고 있다.해방 57년이 되는 지금에야 겨우 이 명단이 발표된 것은 한참 늦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므로 환영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서는 환영은커녕 원래 광복회가 넘겨주었던 명단이 692명인데, 집중 심의대상 16명이 추가된 것을트집잡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태산은 보지 못하고, 티끌을 문제삼으니 한 마디로 말해서 균형 감각의 상실이다.
어떤 사람은 이들 16명이 비록 민족반역행위를 했지만 해방 후 문화, 예술분야에서 공로가 있으므로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충분한 검증 없이 발표하면 친일파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혀 옳지 않다. 2차대전 직후 프랑스를 보자. 친독 괴뢰정부였던 비시정권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프랑스인들은 전후 가차없는 심판을 받았다. 주섭일이 쓴 '프랑스의 대숙청'이란 책을 보면 나치 협력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20만명이 넘고, 그 중 7천 여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791명에게는 실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밖에 1만 여명이 강제노동형, 7만 여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티끌만치라도 민족을 배신한 사람은 영원히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비시정권의 최고지도자였던 페탱원수는 1차대전시 구국의 영웅이었지만 나치지배하의 민족반역행위에 대한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죄상으로는 사형이었으나 고령을 참작하여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천재 작가 브라지야크는카뮈, 장 콕토 등 60여명의 문인들이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탄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살되었다. 지식인의 민족반역은 보통 사람들의 반역보다 훨씬 죄가 무겁다는 검사의 논고는 추상같았다. 역사의 심판은 이처럼 냉엄한 것이며, 새 나라의 출발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해방 후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려던 반민특위가 이승만에 의해 강제 해산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는 프랑스의 비시정권보다 열 배나 긴 기간을 식민지로 있었으면서도 단 한 명도 친일파를 심판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독립운동가의 집안은 3대가 몰락하고 친일파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려온 거꾸로 된 역사. 나라의 출발이 이러니 우리 사회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만 하면 된다는 반칙사회가 돼버린 게 아닌가. 그런데도 대통령은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또 어떤가. 존경하는 인물에서 김구 선생을 제치고 박정희가 1위를 차지하는 나라.
이 나라가 혹시라도 다시 식민지가 되는 날이 올 때, 과연 누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나설 것인가? 하늘이 두 동강 나더라도 민족반역은 용서되지 않으며,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엄정한 진리가 국민의 마음에 새겨질 때, 비로소 민족정기가 살고 정의가 숨쉬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교수 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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