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 이야기-추억의 만화영화

아주 가끔 영화가 '불후의 명작'으로 남는 수가 있다. 그 영화가 '애들이나 보는'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명작이 주는 감동은 좀체 반감되지 않는다.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허리케인 죠, 플란더스의 개, 들장미 소녀 캔디…. 그 시절(70년대말~90년대초) 우리를 열광케 한 그 만화엔 분명 뭔가 있었다.

"(뿌욱~뿌욱~)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기계인간의 몸)을 얻기 위해 기차를 타고 우주로 여행을 떠난다. 기차가 역에 정차할 때마다 질투, 슬픔, 좌절, 나태, 전쟁 등 세상의 면면을 목격한다.

결국 철이는 인생의 아름다움은 유한함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기계인간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종착역에서 어린시절의 꿈을 과감히 배반한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속에 있는 청춘의 환상일 뿐이야"(캬~). 메텔의 이 마지막 대사로 철이와 우리 또래들은 '어른'이 되었다.

가장 훌륭한 만화영화의 엔딩이라면? '보물섬'을 기억하는가. 작가 데자키 오사무가 창조한 엔딩은 소년 어드벤처물에 불과했던 원작을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청년이 된 짐은 몇년 후 술집 뒷골목에서 퇴락한 실버 선장을 우연히 만난다.

실버는 짐을 외면하지만, 그의 늙은 앵무새가 더이상 날지 못하자, "아직 날 수 있어"를 외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라고 한다.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의 엔딩(죽은 한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오르는 장면)을 명작으로 꼽는 분도 있지만, 실버가 보여주는 섬뜩한 생의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데자키의 또다른 작품 '허리케인 죠(원제 내일의 죠)'. 만신창이가 된 몸의 복서 죠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빈민촌을 흐르는 강변에 서있다. 멀리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기차가 철로를 지난다.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죠. "모든 것을 사르고 나면 재만 남겠지…". 90년대초 가수 김종서가 부른 이 영화의 주제가를 들으며 아이들은 왠지 비장해져야 할 것 같았다.

데자키의 말을 빌리자. "설사 어린이를 위한 만화라 해도 마찬가지다. 재미만 던져줄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생각할 것들을 제시해야 한다. 당장 이해는 못하더라도 느낌은 남지 않겠나".

지금 '포켓 몬스터'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10년, 20년 후에 어떤 느낌으로 그 시절 만화영화를 추억하게 될까.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