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영변의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 '진달래꽃'일부).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개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 '향수' 일부). 우리 현대시의 금자탑을 쌓은 이들의 이 아름다운 시를 암송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을 주조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율격을 계승하고 새로운 경지로 올려놓은 김소월(金素月)과 향토적인 정서를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한 이미지와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형상화했던 정지용(鄭芝溶)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1902년 동갑내기로 지용은 5월 15일, 소월은 8월 6일 각각 탄생 100주년을 맞게 돼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진달래꽃'으로 애송시 1위라는 부동의 인기를 누려온 소월과 1988년 해금조치 이전까지 우리 문학사의 그늘에 묻혀 있어야 했던 지용의 올해 추모행사는 거꾸로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을 띠고 있어 화제다. 소월의 추모행사는 대산문화재단·민족문학작가회의가 9월에 여는 탄생 100주년 문인 6인 기념행사로만 치러지는데, 지용의 경우 탄생일을 전후해서 서울과 고향인 충북 옥천 등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고 일본 교토에 '향수' 시비도 건립된다.
▲그렇다면 이런 대조적인 분위기는 어디에 그 뿌리가 있는 걸까. 소월은 고향이 이북(평북 구성)이며, 문단 내에서 교우가 거의 없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소위 '사단'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반면 6·25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40여년이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던 지용은 고향이 옥천이어서 해금 이후 지자체까지 추모제를 열고, 이화여전 교수 역임과 청록파 3가 시인 배출, 800여명이 참여하는 '지용회' 등에 힘을 입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난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6·25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서울 근교에서 전투기의 기관총 소사로 지용이 사망했다는 목격담이 나와 그간의 오해가 풀렸지만, 그로서는 뒤늦게 찾아온 행운인 셈이다. 아무튼 분단의 깊은 골은 우리 문학에 있어서도 이 같은 희비를 끊임없이 연출하고 있는 느낌이다. 진실과 관계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이념의 희생양'이 됐던 지용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월에 대한 푸대접 역시 분단의 아픔과 연고주의의 현상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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