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명관칼럼-인권부재의 아시아

6월 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6.25의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리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건다고 해도 어떻게 현대무기를 총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헤아릴 수 없는 제 민족을 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전쟁과 혁명과 반혁명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되풀이한 20세기의 유령에 이 민족이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일으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6.25의 그 엄청난 희생에서 얻은 최대의 교훈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부터 반세기, 2000년 6월 15일에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 교훈이 많은 우여곡절 끝에 열매를 맺게 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6월을 다시 맞이하면서 21세기 처음으로 세계적인 월드컵을 한.일 공동으로 열고 있다고 들떠 있다. 이 벅찬 현실 속에서 6.25도 6.15도 과거사로 자칫하면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축제란 언제나 현재를 구가하자는 것이며 지난날이나 오늘의 슬픔 같은 것은 잊어버리자는 것이어서 하나의 환각과도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6.25에서 6.15 그리고 오늘의 6월 월드컵으로 이어지는 선에는 깊은 역사적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동족상잔의 그릇된 역사를 부정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데 그것이 한.일 간은 물론 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한반도의 비극도 극복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선인들이 3.1 독립선언에 우리의 독립과 자유, 생존과 번영이 '동양평화''세계평화, 인류 행복'에 이어진다고 본 것은 천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을 치르면서 6월이라는 이달을 감회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축구에서의 승패에만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환각에 빠진 것처럼 환호하기에는 6월이라는 달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더욱이 지난 5월 8일 5명의 탈북자가 중국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에 돌입하여 망명을 신청했다가 중국관헌에게 연행됐던 사건, 그리고 지금도 베이징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한 4명의 탈북자가 초조한 마음으로 자유 또는 조국에 송환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시아는 정말로 월드컵 축제에 걸맞은 '동양평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흔히 우리는 동북아의 협력 또는 동북아 공동체를 말해왔다. 그러한 시대가 가능하기 위해서 정치보다는 우선 경제적 교류가 필요하다 했고 국가 간의 화해를 위하여 스포츠나 문화의 역할을 강조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면에서도 이번 월드컵이 단순한 축제로 끝나면서 동북아 특히 한반도에 남아 있는 아픔을 은폐하고 망각하려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정치적 망명이나 인권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무성의한가만 탓할 것이 아니다. 국제법이나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중국관헌들이 일본 총영사관에 돌입해 탈북자들을 끌어낸 것을 원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국제관계나 대북관계를 생각해서 조용한 외교를 추진한다고 해온 우리 정부에 과연 인권감각이 있었는가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체적으로 인권부재의 아시아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앞으로 더욱이 차기 정권에 있어서는 탈북자 문제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긴급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기아나 빈곤에서 탈출한다고 멎을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와 보다 풍요한 사회를 찾으려는 인간 심정에는 한이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을 받아주어야 할 또 하나의 조국 그리고 반겨줄 수 있는 동족과 친지가 있다는 것이 그들이 북한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행사로서만 만족하지 않고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화해와 평화라는 이념을 내걸고 있다. 그렇다면 이 축제는 아시아의 인권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아시아인들, 아시아 국가들의 대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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