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생지신(尾生之信)

잘 알려진 고사성어중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이 있다.미생이라는 사람이 연인과 다리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여자가 오지 않았다. 물은 점점 차오르고 여인은 오지 않고, 그러나 그는 끝까지 기다렸다. 결국 차오른 물살에 떠밀리며 견디다 기둥을 끌어 안은 채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 소진이 연나라 왕에게 말한데서 연유한다. 더러는 신의가 매우 두터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즘같이 영악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세상에서는 주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을 빗대는 말로 자주 쓰이는 고사성어다.

그런데 이런 미생지신의 믿음이 새삼스레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떤지. 급하고 빠르기로 말하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우리 아닌가. 번갯불에 콩도 구워먹는 민족인데, 모든 것에 매우 조급하며 빨리빨리를 외쳐대고,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면 불호령을 내리면서도 자신들 만큼은 웬일인지 그게 아니올시다다. 약속시간 지키지 않기가 다반사이다.

시간을 넘겨 남을 기다린다는 것, 정말이지 이것 만큼 괴롭고 화나는 일도 없다. 요즈음 약속시간 안 지키는 것은 어른 애를 떠나서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더욱이 서너명을 넘어 10명정도가 모일라치면, 아무리 빨라도 30분 초과는 기본이다.

늦어도 미안한 감은 별로 없고, 뭐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는 표정이다. 심지어 학생과의 약속에서도 그러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기다림에 지쳐서 이제 그만 갈란다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떤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생애에 있어서 삼분의 일은 잠자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먹고, 마시며 생리활동하는데 소모한다고 한다. 나머지 삼분의 일이 실제로 인간답게 활동하는 시간이라는데, 앞으로는 이 활동부분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상당부분 공제하여 새로운 통계치를 내야할 것 같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에 있어서 이 공제부분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된다. 문화는 예측이 가능하고믿음이 있는데서 싹트는 생물체이다. 이런 풍토에서 얼마 만큼의 문화라는 유기물이 자라날는지. 기성세대는 두고서라도 젊은이들에겐 호되게 꾸짖어 고칠 일이다.

오늘날 미생의 믿음은 바로 손해와 근심, 어리석음이 되며, 소를 따라가는 짓만도 못한 세상이 되었다. 손해볼 일이 있으면 손해도 좀 보고, 어리석다는 소리좀 들으면 어떠랴. 유난히 미생의 믿음이 그리워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양대교수·디지털패션디자인학 전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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