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앙숙 英-佛 모처럼 의기투합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견원지간(犬猿之間). 긴 역사를 통해 영원한 라이벌 관계로 마음속 깊이 상대방에 대한의심과 적대감을 숨기고 있는 프랑스와 영국이 최근 유럽연합(EU) 확대를 앞두고 모처럼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EU 본부에서도 양국의 관리들은 매일매일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고 프랑스는 최근에서야 영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했다.영국인들은 프랑스 사람들을 법을 어기는 민족주의자들로 EU 집행위 조직에 부당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국익을 마치 유럽 전체에 좋은 것인양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인들이 미국의 앞잡이로 EU기구들을 접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면서 EU를 더 효율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사실은 암암리에 EU를 잠식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의심하고 있다.EU에 관한한 양국의 상호 적대감은 지난 60년대 드골 대통령이 영국의 유럽공동시장 가입을 거부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프랑스 출신의 EU 집행위 위원장 자크 들로가 영국이 소화하기 어려운 통합론을 밀어붙였던 지난 85~95년 사이에 더욱 굳어졌다.

드골의 거부는 영국을 미국의 도구로 보는 그의 견해에서 비롯됐지만 최근의 EU에 관한 문제에서는 로마노 프로디 위원장이 이끄는 집행위의 개혁이프랑스 장악력 약화를 위한 영국측의 의도적인 공작으로 비쳐지고 있다.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장악해온 집행위 사무총장 및 농업국장 자리에서 프랑스관리들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더 깊은 의심은 EU 확장과 관련한 것. 프랑스인들은 영국이 EU를 작동불능의 엉망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유럽확장을 꾀하고 있다고 말한다.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고귀한 기업세계는 자유시장지대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양국의 견해는 거의 대칭을 이룰 정도로 반대편에 서 왔다. 영국은 시장주도의 자유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범유럽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는 '사회주의 유럽'의 신봉자들이다.

또 프랑스인들은 EU의 농업정책을 초석으로 생각하는데 비해 영국인들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보호주의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더 나아가 프랑스인들은 EU가 미국에 필적할 수 있는 강력한 블록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영국인들은 그런 생각에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이 모든 문제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유럽신속대응군을 함께 창설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가 방어해야할 원칙도 발견해냈다. 외교정책에 대한 국가단위의 권한이 그것이다.이들은 이라크 문제 등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견해는 다를지 몰라도 군소회원국들이나 심지어 가입을 앞둔 국가들의 주도로 결정된 EU의 입장에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다를 바가 없다. 두나라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며 핵무기 보유국가로서 집행위와 독일정부가 밀고있는 '외교정책의 EU화'에는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유럽 각료회의 권한 강화방안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집행위와 군소회원국들은 이 방안이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제안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이 새로운 우호관계의 시작일지 아니면 일시적인 전술적 제휴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다. 프랑스인들은 유로화에도 아직 가입하지않은 영국인들을 선천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보고 있으며 정가에는 전통적으로 유럽통합의 원동력이 돼왔던 독일과의 유대관계 부활을 그리워하는 세력도 있다.

이들은 독일과의 관계복원이 EU의 중심으로서의 프랑스의 당연한 위치와 주변으로서의 영국의 당연한 위치를 되살릴 것으로 보고 있다.물론 시라크 대통령과 사이가 나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재선 이후 이같은 관계복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독일이 프랑스가 선택한 동반자일지는 몰라도 현실정치는 EU가 당면한 장래구도와 같은 큰 문제에서는 프랑스의 자연스러운 우방은 영국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지적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