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창석칼럼-냄비와 뚝배기

날이 제법 쌀쌀해지고 있다. 이럴 때 배라도 출출할라치면 뜨거운 라면이 떠오른다. 라면은 즉석 요리답게 팔팔 끓는 물에 거의 데치듯이 삶아야 맛있다. 뜨거울 때 마시듯이 먹고나면 온 몸에 땀이 밴다. 다먹고 땀을 닦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10분을 넘기면 식고 퍼져서 맛이 없다. 특별히 준비된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시간마저 급할 때, 라면만큼 편리하고 요긴한 먹을거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60년대에는 라면도 비싼 음식에 속했던 모양이다. 그때만해도 주로 국수를 먹었다. 어쩌다 국수에 라면이라도 한 봉지 들어가면,형제들끼리 서로 뽀글뽀글한 라면을 건지려고 다투던 기억이 난다.

70년대에 들어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라면도 한국인들의 주식처럼 된 것같다.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온 근로자들의 단칸방, 공장 기숙사, 심지어 학교 식당에서도 라면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렇게 라면을 먹으면서 부엌의 용기도 뚝배기나 가마솥에서 냄비와 양은솥으로 바뀐 것같다. 냄비는 급할 때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때문이리라.

요즘 한국인의 잠을 깨우는 것은 주로 된장찌개 냄새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특별히 생각나는게 없거나 입맛이 떨어질 때에는 주로 된장찌개를 찾는다. 또한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먹어야 식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된장찌개를 잘 끓이면 모든 요리를 잘한다고 믿을 정도이다. 라면 맛은 어딜가나 거기서 거기지만, 된장찌개 맛은 집집마다, 식당마다 각양각색이다.

된장찌개 맛에는 누구나 민감하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 뚝배기는 달구지 않을 때에도 별로 차지 않지만, 오래 달구어도 그렇게 뜨거워지지 않는다. 부딪쳐 오는 열기를 찌개에 전달할 뿐, 뚝배기 자신은 별로 달아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사람은 먹는 음식과 함께 그릇도 닮아가는가 보다. 냄비기질과 뚝배기기질을 비교하곤 한다. 나아가 냄비 기질을 일본인에 빗대고, 뚝배기 기질을 한국인에 빗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이나 냄비는 사라지고 있다. 일본도 2차 대전의 패망과 가난을 벗어난지 오래이고, 한국도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지 오래이다. 이제 냄비는 없어지고 있는데 그 기질만 남았나 보다. 그것도 냄비 기질은 다양한 패션으로가장한 한탕주의로 남아있나 보다.

단 한번의 신속하고 뜨거운 거사(?)로 평생을 잘 살려는 것은 냄비기질이다. 단 하나의 자격증으로 평생의 자격을, 단 한번의 고시로 평생의 직위를,단 하나의 지위로 평생의 전문성을 꿈꾸는 것은 냄비기질이다. 나아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냄비제도이다. 그러나 냄비같은 한탕주의의 이면은무자비한 약탈이요, 가차없는 폭행이다.

어느 한 사람이 한탕으로 차지하는 돈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애써 모은 돈을 몽땅 잃게 된다. 어느 한 젊은이가 일류대학에 입학 한번 함으로써 장래를 보장받는다면, 다른 더 많은 젊은이는 평생의 장래를 빼앗길 것이다.어느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자격증이나고시로 평생의 지위와 생계를 보장받는다면, 다른 수많은 사람은 생계의 수단을 잃어버리거나 평생 그 자리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단 한번의 정치적 판짜기로 최고의 권력을 잡는다면, 수많은 배신자나 철새 정치인을 양산할 것이다.냄비는 빨리 식으며, 그것도 아주 차갑게 식는다.

한번의 거사로 번 거액이 가치있게 쓰이겠는가? 일년 바짝 족집게 과외로 한 학문이 과연 일생을함께 할 은은한 학문이 되겠는가? 단 하나의 자격증이나 고시로 보장받은 장래가 평생이 가도록 보람이 있겠는가? 단 한번의 판짜기로 얻은 권력이과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한탕의 거액 뒤에는 수많은 동전이 울고, 하나의 일류대학 뒤에는 진정한 학문이 무너지고, 한 사람의 빛나는 고시 합격생 뒤에는 수많은 낙방생의 평생이 썩어가고, 하나의 새판짜기식 정치 뒤에는 수많은 의리가 깨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철학교수 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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