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지방이여 일어나라

오죽했으면 "서울이 무섭다고 과천부터 긴다"는 우리 속담이 생겨났을까. 옛날부터 서울내기들의 성깔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남대문부터 기어도 될 일을 과천부터 긴 것을 보면. 그런데 민주화된 요즘 세상은 어떨까. 불행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서울에 다만 몇 달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느낀다. 그들의 절대적인 자존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가령 대구출신의 서울 시민이 고향인 대구를 다녀왔다고 치자. 그러면 서울 토박이들은 하나같이 "시골 다녀왔니?"라고 인사한다. 같은 값이면 "고향 다녀왔니?"라고 하면 좀 좋을까. 그들의 눈에는 대구든 부산이든 광주든 모두가 시골인 것이다. 이것이 서울'특별국민'의 우월감이자 선민(選民)의식이다.

선민의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IMF위기 이후 지방은 황폐화됐다. 그래서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를 내걸고 지방이 나섰다. 그러자 서울도 나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서울의 16개 민·관연구소가 그 대표적 예(例)다.

이들이 내놓은 '비전 2011'이라는 보고서가 가관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다.

효율성이 높은 수도권을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발전시켜 여기서 나오는 과실의 일부를 지방으로 넘겨 지방을 발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교만이자 이기(利己)다. 이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분명 효과가 있다.

그러나장기적으로 보면 지역간 불평등 등 사회적 비용의 증대로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린다. 경제만 생각하면 효율이 중요하지만 국가전체로 보면 평등도 중요한 것이다.

아무래도 효율이면 최고라는 천민(賤民)자본주의식 발상인것 같다. 혹시 지방을 자기 집 머슴쯤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은 獨占의 땅

문제는 서울 특별국민은 누가 봐도 뻐길 만 하다는 데 있다. 돈 있고 권력 있고 실력(지식)도 있는데 누가 뭐라 하랴. 서울의 돈을 보자.

국세청이 부동산투기를 잡는다고 선을 그은 6억원 이상 짜리 아파트는 전국에 모두 6만5천681가구. 그런데 부산 2가구를 제외하곤 모두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자칭 제3의 도시 대구는 6억원짜리가 아직 공사 중이어서 명단에 들지도 못했다.

권한도 그렇다. 중앙부처의 100%가 서울에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업무 중 지방 고유업무가 24%밖에 안 된다는 사실만 봐도 권력의 80%는 서울에 있는 것이다.

지적인 분야는 더하다. 전국 박사의 50%가 서울에 있고 정치·행정·산업·학술·교육·언론·연예·스포츠 등 각종 분야에서 핵심 엘리트의 80%가 서울에 있다. 게다가 서울은 미래도 밝다.

엘리트 배출의 창구인 사법·행정·외무·기술시험에서 90%이상을 수도권대학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지방의 우수 고교생(수능5%내)들은 옛날보다 더 많이 서울로 가고 또 지방대학 교수들도 틈만 나면 서울로 가려하고 있다. 출세와 기회가 몰려 있기에 두뇌의 '서울 쏠림'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방의 위기도 지방대학의 위기도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은 이미 서울에 점령당해 버린 정치·경제분야에 이어 정신·두뇌분야에서마저 서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방의 위기가 아닐까.

지방에 두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지방의 미래와 희망을 잃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뇌의 배출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지방의 미래에 대한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다. 지식기반 경제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방은 억울하다

서울쪽은 민주주의의 기본은 결과의 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기회의 균등에 있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서울과 지방의 기회는 균등한가. 최근 물의를 빚었던 서울 강남의 부동산투기 열풍 하나만 봐도 알수 있다.

교육기회의 우위에서 온 것 아닌가. 같은 논리로 경제에서도 수도권과 지방의 기회는 불평등한 것이 현실이다. 정보와 권력 그리고 돈 등 '없는 것이 없는' 서울에서의 기업환경과 '있는 것이 없는'황무지의 지방에서의 기업환경을 놓고 기회균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방이 권한과 돈을 달라는 것은 합리적인 요구이며 또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인재 지역 할당제를 통해 지방과 지방대학을 살리자는 요구도 '헌법정신 위배'이전의 문제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반상(班常)의 출현을 막을수 없다. 앞서의 지적처럼 사회적 신분상승 기회를 서울이 독점하고 있는 한 서울은 언제나 반(班)이고 지방은 상(常)이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 사회관습에 의한 카스트제도가 생겨나서야 될 일인가. 지역간 불균형은 이렇게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전국의 지식인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분권운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성장이 그동안 최고의 가치였다면 이제는 평등이 그에 못지 않은 가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내달 7일 대구서 열리는 전국 8개 지역 분권운동 본부 모임이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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