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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형,

권위 있는 국제성형외과 학회지에 실린 형의 논문 잘 받아 보았습니다.

당장이라도 축하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보내준 논문에 대한 성의로는 너무 의례적인 인사 같기에 오히려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논문을 보고 다시 한번 형의 사물을 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나는 항상 형을 보면서 형의 학문적 열정과 자질이 개원의(開院醫)란 잘못 선택된 굴레 속에서 그냥 버려져 잠자고 있다는 애석함이 많았는데 이 논문이 조금이나마 그 애석함을 덜어주었습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흔히 많은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나 혹은 순수한 직감에 의존해서 어느 한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한 길을 가다보면 가지 않았던 길이 더 편안하고 아름다웠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지만 결국 가던 길을 열심히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길을 열심히 가다보면 힘들면 힘든 대로 편안하면 편안한 대로 그 길을 즐기며 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등산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 되는데 내 삶에서는 아직도 불안과 불만족,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 찬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돌이켜 보면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은 길이었지만 결국 내가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길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L형이나 저나 또는 모든 사람들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혹은 예쁜 길이든 험한 길이든, 일단 선택된 자신의 길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산을 오르며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그 길을 항상 즐기며 산을 오르듯…. 다시 한번 개원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런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L형의 내공에 찬사를 보냅니다.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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