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은 광기어린 천재에 의해 발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어떤 학문이 처음 태동됐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세상의 몰이해는 물론 끊임없는 박해속에서도 투철한 소명의식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으로 꿋꿋이 자신에 맡겨진 소명을 완수해 뒤늦게 추앙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 지질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윌리엄 스미스(1769~1839)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초로 지질도를 완성한 그는 20년 동안의 이 작업으로 가정파탄과 함께 엄청난 부채로 수감되고, 당시 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술수를 벌였지만 결국에는 승리를 거뒀다.
우리나라에 대한 여행 기록문인 '한국:기적의 땅을 가다'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 사이먼 윈체스터의 '세계를 바꾼 지도'(사이언스 북스 펴냄)는 윌리엄 스미스의 전기다.
그러나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한장의 지질도이지만 제목처럼 세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스미스의 저작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정을 보여준다.
또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스미스의 역정이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삶과 흡사할 만큼 닮아 있다는 것이다.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이들은 조선과 영국 방방곡곡을 발로 뛰면서 지도와 지질도를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됐으며, 김정호는 국가기밀죄로 스미스는 채무로 인해 감옥까지 간 것까지 유사하다.
그러나 김정호가 당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간 것에 비하면 스미스는 말년에 진보적인 귀족의 도움으로 업적이 널리 알려져 세계 지질학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영국 국왕으로부터 평생 연금까지 받는 혜택을 누린 것이 다를 뿐이다.
고아로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스미스는 측량.배수.운하.탄광 전문가가 됐지만 지하의 암석이 각기 다른 여러 층으로 이뤄졌으며 각 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이야말로 지구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알게되면서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20년, 스미스는 두발로, 마차로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분석한 지질도를 만들어냈다.
런던의 벌링턴 하우스에 소장돼 있는 이 지질도는 현대 지질학의 선구가 됐고, 다윈의 진화론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됐으며 당시 종교적 세계관에 치명타를 안기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는 데 공헌을 했다.
'사람은 감옥에 가둘 수 있어도 발견은 가두어 놓을 수가 없다'고 한 그의 말은 선구자적인 삶을 살다간 어떤 천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유독 그에게 적절한 표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그의 전 생애가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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