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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을 천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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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화원읍에 있는 대구시립 '희망원'은 어려운 이들이 새 희망을 찾는 곳. 의지가지 없는 1천200여명의 갖가지 장애인과 질환자들의 보금자리이다.

대구시내 시설 생활자의 4분의 1이 사는 희망원의 규모는 대구.경북 최대.

그런 만큼 이곳에서는 1천여명의 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놓고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돕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희망원의 천사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종이 상자가 장구였지요

국악학원장인 류연경(42.여.시지동)씨는 희망원 생활자들에게 벌써 10여년째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덕분에 매주 화요일 점심 식사가 끝나는 낮 12시30분이면 30~50명의 제자들이 내는 풍물소리로 희망원이 요란하다.

이곳에서의 첫 국악 수업을 얘기하던 류 원장의 입가에서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첫해엔 지하실에서 종이 상자를 장구 삼아 두들기도록 하며 장구채 잡는 법을 가르쳤다는 것. 희망원측이 마련해 준 장구.꽹과리.징.북만도 50개가 넘고 행사 때마다 전통복장을 갖춰 입고 길놀이를 할 만큼 모양새를 내게 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감회 깊은 일.

원생들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배우는 일에 쉽게 싫증내고 배운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려 난감케 했던 원생들. 그러나 이제는 도라지.창부타령.꽃타령을 큰 탈 없이 불러재끼며 뽐낼 거리가 생겼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류 원장은 악기를 신명나게 두드리다 보니 병을 잊고 재활에도 도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부분 불편한 사람들이다 보니 손이 제풀에 놀고 폼이 어설픕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의 모든 모습은 아닙니다.

그들에겐 '밖'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박함이 있지요. 선생님이 온다며 달려 나와 차 문을 열어주고 자활작업장에서 번 돈으로 샀다며 200원짜리 자판 커피를 뽑아줍니다.

인사성이 밝고 항상 감사할 줄 압니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탐욕을 모릅니다". 류 원장은 외부인들이 희망원 식구들을 비뚤어진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마음의 때까지 씻겨 드립니다

이름 밝히기가 부끄럽다며 그냥 '김 팀장'이라 부르라는 주부 김씨(43.도원동)는 매주 월.화요일 희망원 식구들의 몸 씻기는 일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혼자서는 씻을 수조차 없는 수백명의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봉사 대상.

7~9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30여명의 목욕을 책임지고 있는 김씨는 초기 봉사 때의 어려움이 아련한 듯했다.

탈의실 번호를 잊어버려 우왕좌왕하는 원생들도 안내해야 했고, 동료 봉사자 없이 혼자 수십명을 씻겨야 한 날도 있었다는 것. 그러나 극단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함께 하는 희망원 식구들의 모습에서 감동 받았던 일을 김씨는 더 애써 들려줬다.

"앞을 못보는 이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짝이 돼 함께 목욕을 합니다.

서로의 장애를 그렇게 해서 메워주는 것이지요. 때 밀고 몸 닦고 속옷까지 챙겨주며 목욕 내내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오로지 그 짝만을 챙겨 주더라구요. 가슴 한켠이 찡해져 왔습니다".

원생 각자를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토록 도와야 하다보니 희망원에는 등록된 목욕봉사자만도 50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등록만 하고는 한 두번 나오다가 그만두는 이가 적잖을 정도로 목욕 봉사는 힘든 일로 꼽힌다고도 했다.

◇스케치북에 그린 희망

이곳 자원봉사자 모임 회장 이춘화(43.여)씨는 붓으로 희망원 식구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을 맡고 있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크레용.물감.사인펜.색연필 등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미술강좌를 3년째 열고 있는 것.

그러면서 자신이 그린 온화한 분위기의 그림들을 희망원 숙사 곳곳에 내붙여 원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일도 맡았다.

그림 치료가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데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확신하는 것.

"희망원 식구들 그림의 특징은 스케일이 작다는 것입니다.

나무.산.집.사람까지 너무도 작게 그립니다.

성격이 소극적이란 인상을 많이 주지요. 삐뚤삐뚤하게 그리면서 어떤 색을 칠해야 할지 몰라 드물잖게 꼬치꼬치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그림에 흡족해 합니다.

미술치료가 소극적인 이들에게 자기 표현력을 높여 주기때문입니다".

이씨는 머잖아 희망원 식구들의 그림으로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했다.

◇이발할 분 오세요

희망원 원생들의 머리 다듬는 일을 맡은 신석관(41.월성동)씨는 그 자신도 척추장애 5급 장애인. 11년간 다니던 회사가 IMF사태 후 부도 나 아내(40)와 함께 이미용을 배웠다고 했다.

강직성 척추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에게 '가위질'은 마지막 남은 희망. 자격증을 딴 뒤 '실습 삼아' 시작했던 희망원 이용 봉사가 어느새 3년이나 됐다.

신씨는 희망원을 수시로 찾는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미용실이 비교적 한산한 오전9~오후3시 사이가 그런 때. 그리고는 2~3명의 동료 봉사자들과 함께 하루 10여명의 머리를 만져 주는 것이다.

"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힘들어 하거나 놀라야 했던 적이 한두번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제대로 못가누는 사람들이 많아 다루기가 만만찮았지요. 잠시 한눈 파는 사이 가위를 들어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리는 못말릴 '손님'도 있었습니다". 이곳 식구 대부분은 감기 편한 스포츠형 머리를 원하지만 게중에는 '신사 스타일로 해 달라'고 주문하는 멋쟁이도 있다며 신씨는 웃었다.

신씨는 이런 봉사를 통해 자신이 오히려 도움 받았다고 했다.

희망원에서 용기를 다시 얻어 장애와 실직을 넘을 수 있었다는 것. "남을 돕겠다고 오는 줄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나 자신이 소중한 것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3년 전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면 빠뜨리지 않고 희망원을 찾는 김지언(64.여.대곡동)씨. 예순 넘긴 나이에 2시간 꼬박 서서 해야 하는 일이 쉽잖지만 이곳에 왔다가야만 아픈 다리와 허리가 씻은 듯 낫는다고 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봉사를 하고 나환자 돕기 모임에도 다녔었다는 김씨는 헌옷을 전달하려고 찾았다가 희망원과 긴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그 봉사는 삶의 가장 힘든 한 때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돼 되돌아 왔다.

군 제대 후 몇년간 당뇨병을 앓던 큰 아들(당시 32세)을 지난해 가슴에 묻어야 했을 때, 절망은 김씨의 온몸을 가라앉혀 세상 살이에 손을 놓게 했다.

하지만 그 절망은 어머니가 봉사하는 희망원까지는 따라 붙지 못했다.

"아들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메이지만 정신없이 봉사하다 보니 이길만 합디다.

나야 뭐 큰 일이나 하는 게 있습니까. 버스를 두번씩이나 갈아타고 이 먼 곳까지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씨는 희망원 마당에 들어서면 달려와 손을 꼭 잡고 아는 체 하는 원생들이 천사처럼 보인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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