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U대회 성공과 이념갈등

'북핵저지시민연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견해가 북한을 보는 다양한 입장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는 다양성이라는 가치야말로 사회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을 보는 시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를 형성해 가면서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과 관점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견해'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행동'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굳이 그 때 그 자리에서 그런 행동이 필요했느냐는 것입니다.

2003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의 성공을 침체한 지역발전의 전기로 삼고자 하는 대구시민의 처지에서 보면 여러분의 행동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듣자니 기자회견은 '언론의 편향된 북한 보도'에 대해 말하려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김정일 타도하여 북한 주민 구출하자'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 동포가 산다'는 플래카드와 피켓이 등장하였고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 주장이야 다른 곳, 다른 장소에서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격으로 하필 유니버시아드 대회장 문턱에 와서 그런 살벌한 구호를 내거느냐는 것입니다.

그 의도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목표가 '반북' 주장을 쟁점화하고 사회의 이목을 끌려는 것이었다면 여러분은 '성공했습니다'. 여러분의 기자회견에 자극을 받은 북측기자와 여러분 사이에 주먹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논란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북핵저지시민연대' 여러분은 말하자면 성과를 이룬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구시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구가 젖 먹은 힘까지 다 짜내어 준비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어떻게 마련하였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대구를 세계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우리 지역사회의 분위기도 다잡아 보겠다고 한 유니버시아드입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포기를 했다가 못내 미련이 남아 다시 신청을 해서 따낸 대회입니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 '북핵저지시민연대'에 대해 저는 대구시민으로서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이념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념이야 여러분과 같은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단체의 '흥행'을 위해서 대구시민들의 꿈을 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핵저지시민연대'의 '흥행'을 위해 유니버시아드를 볼모로 잡지 마십시오.

여러분이야 이런 문제는 안중에도 없겠습니다만 우리 대구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경제가 쇠퇴하고 있고 사회분위기도 끝 모를 침체 상태에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지하철 참사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큰 상처가 있습니다.

유니버시아드의 성공은 우리가 이런 고통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거라고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대구 시민들의 침울한 마음을 가시게 할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합니다.

'북핵저지시민연대' 여러분, 잔칫집에 재를 뿌리지 마십시오.

우리 대구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접빈객(接賓客)입니다.

북측 참가자는 우리에게 손님입니다.

손님에게 누구누구는 '타도'되어야 하고 '죽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대구 사람들의 성정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님을 정중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을 사람 노릇의 으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대구시민들은 북측에서 참가한 선수와 응원단을 따뜻하게 대접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면서 대구 시민들은 지금 대단히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우익이고 좌익이고 정치적 이념 논쟁에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든 이 행복한 분위기를 깨서는 안됩니다.

세계 젊은이들의 패기와 우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대구시민들은 대동단결하고 있습니다.

힘을 얻고 있습니다.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의 슬로건은 '하나가 되는 꿈'입니다.

다양한 인종, 종교, 이념을 가진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곳 달구벌에 모였습니다.

하나가 되자면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다양성의 공존이야말로 '하나가 되는 꿈'의 전제입니다.

북측에서 온 동포들을 사랑으로 맞이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김태일 영남대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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