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해결을 위한 해설 및 읽기자료
▶ 논제의 요구 사항을 살펴본다
제시문 분석과 논술문 작성의 방향은 설문에서 파악된 출제 의도에 맞추어 결정된다. 이 논제는 단순히 과학과 다른 인접 학문의 관계를 비교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물론 그런 과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과학적 태도 문제로 집약해야 한다.
'과학'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 체계라는 일반적 의미요, 또 하나는 자연 과학을 뜻한다. 이 논제에서는 인문 과학이나 사회 과학과 대별되는 자연 과학을 의미한다. 근대 학문은 인문 과학에서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이 갈라져 나오면서 성립되었다. 따라서 근대 이후로 각 학문은 좀더 세밀하게 쪼개지고 전문화되는 추세 속에서 설정된다. 이렇게 각 학문의 분과 영역이 발달되면서 각 학문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으나 그럴수록 각 학문의 연계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왜냐 하면 학문은 결국 인간의 복합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학문의 연계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문제 해결 차원이 아니더라도 각 학문은 그 학문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각 학문만의 고유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 개별 학문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하면서 인접 학문의 성과와 어떻게 연계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 논제의 제시문에서는 과학의 정체성이라는 일반적인 문제와 또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문학 분야의 성격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과학의 본질적 특성과 인문학과의 차이, 진정한 과학적 태도를 모색해야 한다.
▶ 제시문을 꼼꼼히 분석한다
논술에서 제대로 제시문을 분석하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중요하다. 단순한 요약이나 분석이 아니라, 논제의 요구 사항에 걸맞은 내용 위주로 핵심을 짚어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논지 전개에 꼭 반영을 해야 한다. 먼저 핵심 논지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
(가)
· 과학이냐 아니냐는 참/거짓에 따른 결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정의 합리성으로 판단한다.
· 구체적인 과학 방법은 개별 과학에 따라 다를 수 있다.
· 문학이나 종교는 문제 다루는 방식이 주관적이므로 대표적인 비과학적 분야이다.
· 심리학, 교육학 등은 과학적인 면과 비과학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과정은 과학적이지만 설명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 과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진리지만 그 결론은 완전한 진리는 아니다.
· 그렇지만 과학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나)
· 과학자들의 작업은 모두 논리에 의해 규명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반논리주의, 반합리주의이다.
· 과학에서 논리의 역할은 법칙적 설명을 할 때 중요해진다.
· 논리 자체가 단순하지 않으므로 성급하게 논리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을 일치시킬 수 없다.
· 과학은 현상의 근거와 배후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그 탐구 열정을 우주 한계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다)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견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상상력의 비약이 중요하다.
· 과학을 기계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과학은 사실들이나 경험에 통일성을 부여하는데 이럴 때 중요한 것이 창조적 행위이다.
이렇게 보면 세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세 글을 통해 가장 명확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자연 과학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잘못된 통념이거나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글(가)가 전통적인 과학관에 가까워 문학 따위를 비과학으로 못박고 있다. 이에 반해 글 (다)는 우리가 보통 비과학적 행위로 생각하기 쉬운 상상력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글 (나)는 두 글의 중간 정도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논리나 합리성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경계하면서도 과학 법칙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 이성의 무한한 영역을 언급하고 있다.
▶ 논지 전개 방안을 모색하며 논거를 찾는다
이런 유형의 논술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새로운 논거를 통해 보강하면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부분을 치밀하게 논증하면 된다.
과학에 대한 통념은 비과학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오해일 수도 있으나 그 계기는 근대 과학 자체가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근대 과학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우주 자연의 흐름을 하나의 법칙(기계주의)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의 상대주의 과학관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의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기계주의적 과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옳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근대 과학의 영향으로 과학적 진리의 객관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객관주의에 대한 신뢰가 과학의 가치 중립성의 주요 근거가 된다. 그러나 과학이 도덕적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다는 생각 자체가 지극히 가치 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근대 과학이건 탈근대 과학이건 과정상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태도만은 변함이 없다. 다만 문학적 상상력이나 직관적 창의력 등을 그런 과정상의 합리성으로 보느냐가 문제다. 첫 번째 제시문에서는 그런 요소를 주관적이라 하여 비과학적인 것으로 처리했지만 세 번째 제시문에서는 그것도 발견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과학이 완전한 논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두 번째 글도 세 번째 논지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과학은 합리적 과정이 핵심 태도이긴 하지만 창조적 발견 절차 또한 과학의 핵심 영역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발견 절차가 자연 과학이나 인문 과학에서 모두 중요한 사유 과정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학문간의 연계성 강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자유 정신과 비판 정신을 기본 뼈대로 하는 인문학적 소양은 과학의 영역을 확대하거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과학은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자연 세계에 왜 존재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인데 그러한 사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다. 이러한 통찰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이므로 과학과 비과학을 단순하게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가능하다.
▶ 논리적 구성과 전개를 위한 개요를 작성한다
개요짜기는 단순히 글의 구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글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표이다. 그러니까 형식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틀에 꿰어맞추는 식보다는 어떤 식의 문제를 설정하고, 제기된 문제를 어떻게 치열하게 논증하여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어떤 식으로 마무리해야 강한 설득력을 발휘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자신의 논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실질적인 개요를 작성해야 한다.
열린 과학과 진정한 과학적 태도
▶ 과학의 특성
과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객관성, 합리성, 엄밀성을 자신의 특성으로 추구한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을 합리적이고 엄밀하게 다루는 연구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 엄밀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학의 특성을 자신의 주장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과학은 중세 사회와의 투쟁에 의해 성립되었다. 중세 사회는 종교, 미신 등 '비과학적'인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임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인 것'으로 강요될 뿐이었다. 그것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일탈자로, 신성을 모독한 자로 처벌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 세계와의 괴리, 억압적 사회 분위기는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사회 변화를 위한 몸부림을 불러일으켰다. 농민 봉기와 부르주아 혁명이 중세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과학은 중세 지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중세 지식과의 투쟁에서 과학이 취한 방법이 바로 객관성, 합리성, 엄밀성이며, 과학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에도 이런 특성은 계속 발전한다. 객관성은 연구 대상의 객관성과 연구 과정의 객관성, 연구 결과의 객관성을 이야기한다. 과학의 연구 대상은 인간의 사고로부터 독립돼 있는 객관 세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고, 연구자의 특수한 이해나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아 야만이 객관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학은 그 연구 결과가 다수의 과학자에 의해 증명되지 않은 것은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과학은 연구 대상을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않는다. 특정한 연구 목적에 합당하고 과학 자체에 의해 그 합리성이 이미 입증된 방법만을 취한다. 이것이 합리성이다. 과학의 엄밀성은 연구 과정의 철저한 통제를 이야기한다. 잘 훈련된 과학자들이 왜곡이나 오류의 소지가 있는 변수를 제거하고, 정확하고 치밀한 과정에 의해서만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믿을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한 과학의 자기 제어 장치이며, 경험주의든, 합리주의든, 귀납의 방법을 택하든, 연역의 방법을 택하든 모든 학파에서 과학 최고의 가치로 추구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이 세 가지 방법에 의한 연구 결과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 과학의 발전과 한계
근대 이후 학문이 전문화되어 온 과정은 과학문명 발달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자연 과학은 사회 과학과 더불어 인문 과학에서 독립해 더욱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자연과 인간 사회의 물질 세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은 그 연구 방법의 객관성과 합리성으로서 근대 정신의 표상이 되었다. 인문학, 사회학이 자연 과학과 더불어 인문 과학, 사회 과학이라 하여 '과학'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확장되어 나간 자연 과학의 방법론 때문이었다.
학문이 세밀화 되고 전문화되어 간 것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이해되고 또 그렇게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 흐름은 근대의 부작용이 나타남에 따라 회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다보니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거나 순수 학문의 세계로 오해받거나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가치 중립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가치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연구하고 규명할 뿐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용되는지 관심이 없다면 그 자체가 무책임한 권력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연구 결과가 원자 폭탄의 재앙이 된 것을 후회하고 통탄한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성이란 개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고자 하는 노력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긍정적이지만 자연 과학이 객관성을 바탕으로 그 지식이나 실험 결과를 절대시하는 것은 오히려 비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실제의 과학에서는 과학자 집단의 편견이나 과학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합리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도 결국은 그러한 객관성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인간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낳은 병폐일 수 있다.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한 환경 파괴는 그런 병폐의 비극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객관성과 합리성이 추구하는 태도의 미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전근대의 잘못된 삶의 양식을 벗어날 수 있었고 두루두루 빵을 나눌 수 있는 과학 발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그런 태도를 절대화하고 사회적 가치로부터 분리하려는 배타적 태도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 철학자이면서 과학 철학자였던 칼 포퍼의 견해를 새겨둘 만하다. 독자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자연 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과학 태도가 필요하지만, 과학 또는 과학적 진술은 모든 오류를 배제하고 모든 것을 설명해 낼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가설이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과학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진리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이 자유롭게 반증되기 위해서 자유로운 사회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온 것이 그의 유명한 사회 철학론인 '열린 사회론'이다.
다음은 전문성에 대한 회의이다. 전문성의 확대는 세밀한 학문 영역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훼손시켰다. 각 학문의 정체성이나 독자성을 강조하다보니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배타적이게 되고 비현실적인 전문성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고등 학교 학제 과정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것은 그러한 배타성을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 자연 과학과 인접 학문
우리가 자연 과학과 인접 과학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분과를 합치자는 것이 아니다. 각 전문 영역의 독자성을 살려나가되 그 연계성을 강조하자는 것이다. 대등한 통합은 있을 수 없다. 통합되는 순간 부분과 전체, 부분과 부분 사이의 위계가 설정된다. 따라서 우리는 낭만적인 통합 사고와 독불장군식 전문주의를 모두 경계하면서 진정한 과학적 태도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 자연 과학과 인문 과학
인문학은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비판력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 세계다. 그런 정신을 근본으로 삼는 대표적인 분야가 문학, 예술·문화, 철학,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상상력과 통찰력, 인간성(휴머니티)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과학이 추구하는 끊임없는 창의적 발견과 실험 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창의력은 날지 못하는 새의 날개와 같다. 자연 과학이 인문학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전문성을 살려나가되 인문학의 그러한 상상력을 자양분으로 삼거나 계기로 끌어들인다면 자연 과학은 역동적이고 생동적으로 물질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에 따른 부작용도 극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문학의 장점인 통찰력은 어떠한가. 보통 자연 과학 하면 현미경, 망원경과 시계를 떠올린다. 그것은 자연 과학의 핵심적 도구이자 상징물이다. 현미경을 통해 세밀한 관찰을 할 수 있었고 시계를 통해 정확한 실험이 가능했다. 자연 역학을 체계화시킨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보다 갈릴레이가 더 위대한 것은 바로 핵심 도구를 제대로 과학 실험에 원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의 그런 도구와 적용은 통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험을 위한 실험, 실증 세계의 논증을 위한 논증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오늘날 문명을 파괴할 정도로 심각해진 환경 문제는 바로 그런 통찰력이 부족해서였다. 인간과 자연, 우주를 꿰뚫는 사고가 부족했던 것이다. 통찰력은 단순한 논리적 사유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직관과 물질과 정신을 꿰뚫은 연계적·횡단적 사고 방식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힘들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의 따뜻한 핵심 정신인 인간성, 이것이야말로 자연 과학의 전문성을 이사회와 자연과 우주에 연계시킬 수 있는 뼈대이자 동력이다. 우리가 과학의 가치 중립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 때문이다. 인간성이 전제되지 않은 과학은 단순한 도구에 머문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
사회 과학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라 해도 좋고 부분과 부분의 관계라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상호 작용이다. 자연 과학이 물질과 물질, 생물체와 무생물체 등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그 또한 상호 작용이 중요할 터이고 그런 맥락에서 사회 과학은 제대로 된 통찰력을 심어 준다. 자연 과학은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개인의 자유는 사회 체제와 제도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사회 과학이 추구하는 연구 태도나 그 방향이 자연 과학의 태도와 방향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렇다고 자연 과학이 사회 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호 작용을 강조한 것이다. 굳이 지식의 선후로 예를 들자면 자연 과학의 발전이 사회 발전을 가져오므로 사회 과학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반대로 사회 과학의 발전은 자연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과학의 영역이었지만 오히려 사회 진화론 쪽으로 더 많이 작동되었다. 인간 중심주의 오류와 무한대 이성적 계몽주의로 인한 부작용도 많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이 문명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사회학은 사회 과학이란 말이 보여 주듯 자연 과학의 방법론을 도입함으로써 질적인 변화와 제대로 된 학문의 위상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 연관성을 살펴보자.
물리 과학 : 원자 → 응집체
↓
생명 과학 : 세포 → 생물체
↓
사회 과학 : 개인 → 공동체
―장회익, 『과학과 메타과학』에서
물리 과학의 연구 대상인 원자 응집체는 생명과학의 세포를 구성하고 세포의 집합체인 생물체는 결국 사회 과학 연구의 개별 대상인 개인과 같은 차원이므로 서로 유기적이고 연속적인 과정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성을 주목해 보면 학제간 횡단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모든 학문은 일종의 스펙트럼이고 시스템이다. 각 학문 영역의 구체적인 문제가 다를 뿐이다.
▶ 바람직한 과학의 자세
과학자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써 엄밀하게 사물과 자연을 탐구할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과학과 삶의 관계를 통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뉴턴이 근대 과학의 상징적 법칙인 역학을 체계화시킨 것도 단순히 떨어지는 사과를 관찰해서만은 아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그가 그런 자연 현상에서 숨겨진 거대한 법칙을 발견한 것은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력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다. 그의 실험 과정은 매우 유명하다. 처음에는 실험실에서 실험하지 않고 조용한 공원에서 명상과 상상력을 통해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험실에서 검증했을 뿐이다.
과학적 발견이나 아이디어 창출에서 중요한 것이 직관이다. 우리는 지식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따지지만 막상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 직관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직관에서 중요한 것이 상상력인 것이다.
이런 자세와 더불어 통찰력을 강조하는 것은 과학자는 현대와 같이 과학의 힘이 속속들이 미치는 사회에서 자연 과학의 순수성이라는 신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연구 대상이나 과학적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지는 맥락적 사유나 실천에 의한 통찰력이 절실할 것이다.
▶ 개요
·주제문 : 과학의 가치 중립성이라는 통념을 비판하고 과학에서 창의성과 삶의 대한 통찰력을 살려가야 한다.
·구성
서론 : 과학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대안 모색
본론 : 1. 제시문의 공통점 논증 : 과학의 가치 중립성이라는 통념 비판
2. 제시문의 차이점 분석 : 총체적 과정으로서의 과학의 중요성
3. 바람직한 과학적 태도 : 합리성과 통찰력의 중요성과 유연한 연구 태도
결론 : 과학의 성격과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
▶ 모범예문
과학만큼 분명하고 명징한 학문도 없지만 그에 대한 잘못된 통념도 많다. 과학은 과학적 사유나 태도로써 규정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나 태도 자체에 대한 해석이 한결같지 않다. 요즘은 과학 최첨단 시대다. 과학자건 비과학자건 과학에 대한 자유롭고 비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절실하다. 과학의 성격을 이해하고 진정한 과학적 태도는 어떠한 것인지 모색하는 것은 우리 삶의 기본 조건에 대한 성찰과 맞닿아 있다. 세 제시문은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을 통찰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제시문은 모두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라는 통념을 비판한다. 과학이 추구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합리성이나 객관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배타적인 논리만을 중시하거나 주관적 창의력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 기술의 영역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물론이고 과학 자체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통념은 바로잡아야 한다.
글(가)에서 문학을 주관적이라 하여 무조건 비과학으로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문학이 주관적이라 하지만, 문학도 문학 이론이 있는 이상 일정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이라 하여 비판한다면 과학도 주관적일 수 있다. 왜냐 하면 과학은 결국 개인의 창의성이 밑바탕인데 이러한 창의성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글(다)의 코페르니쿠스 예와 같이 발상부터 실험 결과까지 이어지는 총체적 과정과 역동적인 힘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특정 요소가 객관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글(나)에서 과학의 합리성을 지지하면서도 논리주의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꽤 설득력이 있다. 논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과정의 합리성에 대한 오해나 맹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뉴턴의 사과 얘기만 하더라도 역학 자체는 매우 논리적일지 모르나 그런 역학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결국 진정한 과학적 태도는 철저히 합리적이고도 우리 삶의 복합적인 연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통찰력은 단편적인 지식이나 학문 체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지식과 지식의 흐름을 통합된 관점으로 추려 낼 수 있는 전략적 지식과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학제간 연구 태도가 필요하다. 전문화된 학문 영역을 인정하되 각 학문 간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나타난 것이 과학 철학, 과학학, 과학 사회학, 과학사 등의 학문이다. 이런 특정 학문 영역을 통한 연계성 추구뿐 아니라 과학 그 자체에서의 열린 태도를 통한 유연한 연구 태도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자는 인간의 삶의 문제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학문과 연계성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단순한 지적 탐구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직관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과학자는 과학적 연구 대상이나 과학적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지는 맥락적 사유와 통찰력을 지니고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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