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River Runs Through It)'은 1990년 작고한 미국의 저명한 장로교 목사 노먼 맥클린의 자전적 이야기다.
명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작 감독을 맡았고 데뷔 초기의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지역신문기자로 나오는 이 영화는 1993년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했다.
몬타나주 빅 블랙 풋의 깨끗한 자연풍경과 플라이 낚시의 멋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화면을 배경으로 가족간의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잔잔하게 전해준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이 영화에 '폭탄주'가 나온다.
브래드 피트 형제가 동네 술집에서 맥주잔에 위스키잔을 넣어 마시는 장면이다.
엄청난 위스키 소비 증가와 함께 한국 음주문화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폭탄주는 이 영화에서 보듯 미국이 원조다.
영국 런던 지하철 공사 인부들이 먼저 시작했다는 설도 있으나 미국 부두 노동자들이 19세기초 처음 마셨다는 것이 정설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육체 노동자들이 싼값에 빨리 취하기 위해 맥주에 싸구려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보일러 메이커(Boilermaker)'다.
▲한국의 폭탄주는 1980년대 이후 고도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위스키에 맛을 들인 잘나가는 계층 사람들 사이에 즐기기 시작한 폭탄주는 요즘들어 소폭(소주폭탄주)까지 유행시키며 가히 국민주라 불릴 정도로 대중화됐다.
폭탄주 확산의 원인으로 조급한 국민성을 들기도 하고 위스키업자의 부추김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함께 마시고 빨리 끝장 보자는 '음모'가 개재돼 있다는데는 이설이 없을 듯하다.
▲조직을 위해, 우정을 위해, 동업을 위해… 등 온갖 허울을 갖다 붙여 계속 돌려 마신다.
그러면서 고스톱에 벼라별 변종을 만들어내듯 기상천외한 폭탄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원자탄이라 이름붙은 원조 폭탄주를 비롯해서 수소폭탄주 회오리주 금테주 타이타닉주 충성주 쌍끌이주 물총주 난지도주 등등 이름조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갈수록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쪽으로 몰아가는 폭탄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폭탄인지 모른다.
▲망년회로 들썩거리는 연말은 폭탄주의 전성기다.
외국언론이 한국의 음주문화는 폭탄주문화이고, 기업경영은 '술자리경영(MBA= Management By Alcohol)'이라고 비웃고 있지만 폭탄주는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미국에서 가난하고 지친 노동자들이 땀과 눈물을 닦으며 마셨던 싸구려 보일러 메이커가 한국에서는 패거리근성을 조장하는 호기로운 폭탄주로 변신해서 엉뚱한 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폭탄주는 흐르는 강물처럼 아주 조용하게 스쳐 지나간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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