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4 신춘문예 당선작 동시-땡감나무 일기

1

아침에는

강아지가 내 다리에 오줌을 누다가

감잎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고

점심때는

할머니가 음식찌꺼기를 들고와

발 밑에 파묻고 홍시 하나 주워갔다

내 키가 쑥쑥 자라는 것도

품안의 까치집이 한 층 더 높아져

매운 굴뚝 연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정다운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2

교회 종이 울릴 때

어미까치가 팽나무 막대기를 물고 왔다

말썽꾸러기 어린 까치도 다 자라 떠났는데

회초리로 무얼 하나 보았더니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있었다

까치가 다시 막대기를 구하러 간 사이

백혈병을 앓는 영호의 아버지가

내 몸에 기대 한참 울다가 갔다

비가 새는 까치집 걱정

영호 걱정하다가

그만 하루가 다 지나버렸다

3

어젯밤 퇴원한 영호는

하얀 털모자를 쓰고 집으로 왔다

나는 달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을 향해

백혈병을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몇 잎 안 남은 내 머리카락도

영호처럼 다 빠졌다

고맙게도 아침 하늘이

함박눈으로 만든 하얀 털모자를

내 까까머리에 씌워주었다

류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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