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대부분 어린이들이 캠프에 참가한다.
우리나라처럼 당일치기거나 기껏해야 1박2일인 캠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개 보름에서 20일까지 5세 안팎의 어린이들끼리 합숙 생활을 한다.
프로그램은 강이나 모래사장, 숲에서 놀기 같이 대개가 자연과 어울리는 내용들이다.
공부를 가르치지도 책을 읽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강조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밥 먹을 때, 잠 잘 때, 방을 오갈 때 등 생활 속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에티켓을 익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경우 초등학생 쯤 되면 단체 여행이 많아진다.
우리처럼 버스를 타고 휭하니 갔다오는 게 아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악, 들판을 헤쳐가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도 단체 행동의 룰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초등학생의 경우 숙소 안팎 청소나 식사 배식, 장비 점검 등 공동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분담해서 맡게 한다.
능력에 따라 일을 분배하고 지혜를 모으면 일이 훨씬 쉽고 빨라진다는 사실을 저절로 습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의 개성이 무시되는 건 아니다.<
단체 생활의 룰과 개인의 창의성이 적절히 조화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한다.
스스로 룰을 정하게 하거나 과제를 완수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찾도록 허용하고 장려한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 어린이들은 거꾸로 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
부모들은 단체 속에서 자신의 자녀가 두드러지길 원하고, 그렇게 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힘이 모자라거나 행동이 서툰 친구와 함께 어울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단체 생활의 룰은 개인의 사정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현장학습을 갈 때면 꼭 늦게 엄마 손을 잡고 나타나는 어린이들이 있는데 엄마가 핑계를 대는 사이 아이는 미안한 표정 하나 없이 자리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단체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버릇을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물들이는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대구의 한 유치원 교사는 "1박2일 여름 캠프를 다녀오는 게 일년 중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다.
제멋대로인 어린이들을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쉴새 없이 걸려오는 부모들의 전화를 받기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한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전화를 걸어서 우유 먹을 시간이 됐다는 둥, 목소리를 듣게 해 달라는 둥 별난 엄마들이 꼭 있어요. 그러다 보면 분위기가 엉망이 돼 버리죠".
개인이 우선되는 데 비하면 개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 특정 분야에서 자질을 보이던 아이들도 중학교 정도만 되면 꼭같은 콩나물이 돼 버린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성공하는 인간형'을 비슷한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저 학원 잘 다니고, 시험 점수 잘 받아야 제대로 성장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면 "나중에 뭐가 될래"라며 잔소리부터 늘어놓기 십상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아무리 암기를 잘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잘 푼다고 해도 선진국 어린이들에 비해 어른스럽거나 돋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애들 싸움'이라면 무조건 '어른 싸움'을 만들어놓고 보는 부모들부터 변하지 않는 한, 가정에서부터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를 내내 괴롭히고 있는 무질서와 무원칙, 편법 만능의 문화는 앞으로도 달라질 길이 없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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