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오만과 무례라는 전염병

오만과 무례(無禮)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켜보면서, 나는 현대 문명의 야만성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 부시 정권, 거기에 지지를 보내는 미국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절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야말로 문제의 심각한 측면이다.

어떤 나라이건 큰 힘을 가지면 자신보다 약한 나라에 오만과 무례를 범할 수 있다.

만일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이 큰 힘을 갖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겸손한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관광객을 위해서 베트남에 수백 개의 룸살롱을 차려놓았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나는 전혀 자신있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1970년대 중반 '신동아'에 일본인 기생 관광에 대한 르포 기사가 게재되었다.

일본 관광객을 실은 배가 도착하는 항구에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쭉 늘어서 있는 사진이 실렸다.

우리 민족을 그렇게 업신여기고 우리 문화를 짓밟은 일본인들이 사죄의 심정을 갖기는커녕 우리의 부녀자들을 범하다니… 머리끝까지 피가 끓어올랐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지금 우리나라가 베트남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는 명분없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지금도 많은 베트남인들은 전쟁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우리들이 지금 베트남으로 단체 기생관광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오만과 무례라는 전염병이 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선생님의 멱살을 흔드는 학부형들, 이라크에 폭탄을 쏟아붓는 미국,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불도저, 버릇없는 아이들, 무례한 해외 관광객들….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세상의 단면들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 역시 오만과 무례가 팽배한 시대였다.

춘추전국 시대라는 전란의 시대를 그는 살아갔던 것이다.

공자는 시대 상황에 절망감을 느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평화와 사랑을 재건하는 작업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사람들이 자신과 상대편에게 상처를 주고, 끊임없이 고통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공자의 대답은 '콤플렉스-자신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였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편도 존중할 수 없으며, 자신과 상대편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이것은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증오와 파괴를 낳는다.

우리는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편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해서도 안된다.

너 또한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존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이 세상도 자신이 품고 있던 눈부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仁)과 예(禮)의 의미이며, 세상에 평화와 사랑을 건설하려 했던 공자의 전략이었다.

'인'이란 사랑하는 마음이다.

'인'의 출발점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스스로를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확립되면, 그것이 어버이와 형제, 이웃과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예'에 바탕한 질서가 성립될 수 있다.

'예'란 자신과 상대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정신에 바탕을 둔다.

'예'의 정신이란 콤플렉스가 전혀 없는 완벽한 정신 건강의 상태이다

'예'의 정신의 바탕 위에서, 모든 존재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창조적인 관계 맺음이 이루어진다.

전란의 시대에 평화와 사랑을 건설하고자 했던 공자의 프로젝트를 우리는 계승하여야 하며,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완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미국과 이라크가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오랜 부부가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며, 부모와 자녀가 활짝 웃으며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고, 온갖 짐승들도 자신의 터전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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