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3월 카리브해의 마티니크 섬의 펠레 화산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산밑에 위치한 세인트 피에세 시의 시민들은 화산이 폭발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 섬의 주지사 루이 무테에게는 화산 폭발보다 다가오는 선거가 더 큰 관심사였다.
화산 폭발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자신이 속한 집권당 후보의 당선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지역신문 편집장들에게 화산 폭발 위험이 거의 없다는 기사를 내보낼 것을 종용했고, 시민들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도로를 봉쇄했으며 화산 폭발에 대한 우려를 담은 전보를 검열하는 '정신 나간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운명의 날 오전 8시. 펠레 화산은 폭발하고 말았다.
섬을 휩쓸고 간 화산재는 순식간에 주지사를 포함해 3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화산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2명 뿐이었다.
정치인의 어처구니없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부른 대참극이었다.
때때로 역사는 예기치 않은 사람들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어떤 운전사가 자동차의 차로 방향을 잘못 잡거나 과학자가 연구실을 청소하는 것을 잊었다거나 술 취한 병사가 소란을 피우는 것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TV프로그램 전문 프로듀서인 릭 바이어가 지은 '서프라이즈 세계사 100'(채희석 옮김.한숲 펴냄)에는 흥미로우며 더러는 충격적인 역사속 뒷 이야기 100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대한 원자 폭탄 투하가 오역 때문에 빚어졌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1945년 7월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식 항복 문건을 발표하기 전 간타로 스즈키 수상은 내각의 이같은 결정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내각은 모쿠사츠(mokusatsu)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모쿠사츠는 '당분간 발표를 미룬다'와 '무시한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일본말.
간타로 수상의 발표를 접한 일본 언론들은 모쿠사츠를 '무시한다', '항복할 의사가 없다'로 해석했고 미국 언론들은 이를 받아 톱기사로 보도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생겨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두 도시를 초토화시킨 원폭 투하는 정치인이 잘못 선택한 어휘 하나 때문에 벌어진 비극으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서프라이즈…'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는 조지 워싱턴이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부터,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이 1889년 건설된 뒤 프랑스 예술계로부터 '미운 털 박힌 흉물' 취급을 받으며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가 라디오송신탑 기능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연, 여성 환자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기가 껄끄러웠던 점잖은 프랑스 의사에 의해 청진기가 발명된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이 책은 역사 전문 '히스토리 채널'의 특별 다큐멘터리 '역사의 순간들'을 재구성한 것으로, 상당 부분은 저자가 이 책을 위해 다시 쓴 것들이다.
한 에피소드마다 두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짧은 호흡으로 구성돼 있으며, 200여점의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읽기에 부담이 없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