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저 햇살

겨우내 엷던 햇빛이 요며칠사이 성큼 짙어진 느낌이다.

하기야 모레(19일)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뺨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매운 기(氣)가 빠지고 습습한 봄의 내음이 나는듯 하다.

버릇처럼 땅만 보고 걸어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 사방에서 와르르 몰려드는 저 햇살! 눈부신 빛살가루의 윤무에 가벼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순간 혈관이 팽창하고 마음의 주름살이 펴지는 듯한 기분. '환희'비슷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씩씩한 걸음걸이로 옆을 지나치는 여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린다.

"어, 봄이네…!"

모처럼 화사한 햇살을 보니 햇빛에 주렸던 한 사진작가의 고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탈북자들을 취재하다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돼 벌써 1년여째 옥살이를 하고 있는 석재현씨. 그의 선배 얘기로는 지난 1년간 석씨는 왼종일 햇빛 한줌 들지 않는 감방에 갇혀있다 얼마전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면서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는 감방으로 옮겨졌다 한다.

형편없는 식사에 종일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비인간적 환경에서 야윌대로 야윈 그이지만 그나마 요즘은 1년만에 보게 된 햇빛에 감사해 하고 있다한다.

맑고 밝은 햇살은 몸과 마음에 두루 양약(良藥)이 된다.

특히 우울증 환자에겐 주변 사람들의 따스한 관심과 밝은 햇살이 항우울제보다도 더 좋은 약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 대다수는 우울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한심한 정치판과 곤두박질치는 경제, 청년실업, 게다가 삽짝 나서기가 겁날만큼 엽기범죄가 횡행하는 이 사회, 더군다나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이 현실 앞에서 우울하지 않는 것이 되레 이상할 판 아닌가.

지난 해 서울지역 일조(日照)시간은 하루 평균 3.97시간으로 예년 하루 평균(5.79)보다 2시간 가량 줄었다.

정도 차는 있지만 이런 현상은 대구.경북지역도 마찬가지. 전문가들은 우울증, 알레르기성 질환, 비타민D 결핍으로 인한 골격계 질병 등 햇빛 부족에 따른 질병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하긴 일조량만인가. 우리 모두 저마다 삶 속에서 만나는 햇빛 찬란한 날들도 언젠가는 점점 줄어들고 빛도 약해져서 결국엔 사라져가고 마는 것임을.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 곳곳에서 한오라기 햇빛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 얼굴에, 어깨에 무진장 내려앉는 저 햇살이 고맙기만 하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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