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 소란하다.
누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얻기 위해 이 난리를 치게 만들었는가. 솔직히 법률적으로는 국회의원들이 벌집을 건드린 셈이고 건드릴 빌미는 대통령이 먼저 제공했다는 게 정답이다.
부패집단으로 지탄받는 국회가 그 정도 발언을 빌미로 탄핵소추 할것까지 있었느냐는 비난, 거기다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만 진작 했었어도 조용히 끝날 일을 끝끝내 오기부려서 일을 덧낼게 뭐냐는 비난이 뒤섞여 정권불신으로 울화가 턱밑까지 차있던 민심까지 보혁(保革)시비로 갈라세우고 들쑤셔 놓았다.
그러나 이제 원론적인 시비의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대통령이 뭐라해명하든 국회가 뭐라 우기든,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하든 안하든 칼자루는 헌법재판소 아홉명의 솔로몬들 손에 쥐어졌다.
벌집을 쑤신자나 구경꾼들끼리의 논쟁과 갈등다툼은 하릴없는 짓거리가 된 셈이다.
따라서 국회, 청와대, 국민은 이 소란스런 국가적 난국을 친노(親盧) 반노(反盧)그룹의 기(氣)싸움이나 여.야의 정치파워게임식으로 풀어갈게 아니라 성숙한 민주국가 국민답게 또 그 지도자들답게 분열과 대립의 각을 추스르고 차분한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이 난국 해법의 순리다.
먼저 국회부터 스스로 자문(自問)해 보자.
왜 193명이나 옳다고 생각하고 의결한 탄핵에 대해 65%가 넘는 '여론'이 '잘못'으로 비난하고 있을까. 대통령의 처신에도 부적절한 원인제공 부분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국회의결이 그처럼 정치 폭거 마냥 비난 받는 데 대해 이상하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의 자화상을 살펴보면 이상해 보이는 국민반응은 이상한 게 아니라는 해답이 보일 것이다.
지금 반대하는 쪽 국민들은 탄핵의 법리적 타당성같은 법 지식을 논하고 있지 않다.
그저 정치풍토와 나라모양을 이꼴로 만들어 놓은 부패세력이 정치적 힘겨루기와 오기 싸움으로 모기보고 칼 빼듯 탄핵의 무기를 허투 휘두르느냐는 반감에 북받쳐 있다.
다시말해 도덕성과 권위를 상실한 정치집단이 내린 의결에 대해서는 그 의결에 비록 타당한 구석이 있다해도 불신하고 저항하겠다는 국민 정서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도둑의 말은 그 말이 진실이라해도 말한자가 도둑이므로 믿어주지 않겠다는 식의 일종의 감성적 비판이다.
만일 우리 국회가 평소 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깨끗하고 권위에 찬 의회기구였고 그들중 193명이나 탄핵이 옳다고 의결했다면 감히 어느 국민이 그런 국회를 폭파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지도 그룹의 도덕성과 권위의 힘은 그런 것이고 국회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다.
탄핵소추 당사자인 노 대통령 또한 뼈아픈 자기 성찰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촛불시위 군중들의 탄핵반대 목소리속에 10분지1, 총선재신임 등 불쑥불쑥 시비꺼리를 만들어내는 진중하지 못한 말버릇과 미흡한 리더십까지 앞으로도 계속 용인해 주겠다는 뜻은 포함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자기 변화의 성찰은 밀쳐두고 TV속의 촛불시위 군중과 노사모 회원들의 눈물과 울부짖음을 보면서 '저것봐, 내가 없으면 안된다고 하잖아'라고 도취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된다.
고건 총리의 행보를 보면서 '이 양반은 농구공처럼 믿음직하고 잘해내는것 같아 누구 없어도 잘 굴러가네'라는 숨은 목소리도 겸허히 들을 수있는 아량을 품어서 나쁠 것도 없다.
그래서 이왕 벌어진 이 난국이 혼란만 남기고 끝날게 아니라 새롭게 더 잘 다듬어진 지도자로 거듭나 돌아온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국민들 또한 탄핵혼란의 소용돌이에 함께 빠져들어 보혁의 갈등을 빚어내기보다 차분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며 각자의 생각과 관계없이 제도와 법을 존중하는 입장을 지켜야 옳다.
촛불시위도 좋고 반대집회도 자유겠지만 하루 12시간씩 탄핵 얘기.반대시위 이야기로 범벅이 되다시피한 TV특집뉴스를 보며 어느쪽으로든 열받으며 소모전을 치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헌재의 솔로몬들이 현명하고 적법, 명쾌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뜻에서도 과격하고 소란스런 집단 의사 표시는 적절한 선에서 자중하자.
지지하는 지도자를 탄핵했다고 의회를 폭파하고 야당 당사를 부수겠다면 만일 헌재가 탄핵을 결정했을 때 그때는 헌법재판소를 폭파할 것인가. 그런 폭력지향적인 논리는 우리 스스로가 비판해온 기성 정치권의 폐해를 닮아가는 것일 뿐이다.
이제 촛불집회, 과격한 '인터넷 테러', 요란한 TV보도는 헌재 판관들의 냉철한 법심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절제하는 게 좋다.
그만하면 찬.반 상호간의 의사표시는 충분히 했다.
열린우리당이 장외정치집회는 삼가겠다고 한 것은 그래서 잘한 일이다.
촛불시위도 너무 오래끌면 식상하고 역풍의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지금은 벌집을 쑤신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국난 해법을 찾기 위한 고요한 성찰을 하고 있어야 할 때다.
그 길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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