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채한 대기자의 책과 세상-여론

오래 전 TV에서 본 기억이다.

극심한 갈수기의 아프리카. 물길을 찾아 코끼리들이 집단으로 이동을 한다.

하늘은 볕만 쨍쨍거릴 뿐 비 한 방울 내릴 기미가 없다.

지친 코끼리들의 더딘 걸음은 안쓰럽고 이미 몇 마리는 기진맥진 쓰러졌다.

덩치 큰 우두머리 격의 코끼리가 하늘에다 코를 휘두르며 우람한 소리를 외쳐보지만 물웅덩이는 소식이 없다.

잠시 코끼리들이 우왕좌왕. 그러더니 이내 우두머리 코끼리를 에워싼 후 힘을 합쳐 공격을 하지 않는가. 우두머리 코끼리도 맥없이 쓰러질 뿐이다.

쓰러진 코끼리를 배경으로 잠시 화면에는 침묵이 흐른다.

곧 묵직한 내레이터의 목소리. 코끼리는 그 집단이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영위해 가지만 공동체가 스스로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이렇게 우두머리 코끼리를 공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두머리가 길을 잘못 인도해 집단이 위험에 빠질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우두머리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에 책임을 지우는 셈이다.

동물들의 본능이려니 하고 넘겼지만 그 후 오늘까지도 두고두고 그 장면들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두머리의 책임감. 그게 뭘까. 하물며 사람의 경우에는. 하늘로 사라져 버린 프랑스의 파일럿이자 동화 '어린 왕자'로 유명한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들 요즘 따라 책임을 따지는 일들이 그렇게 많아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되려고. 툭하면 책임져라 고함치고 툭하면 네 책임이라며 호통이다.

책임을 아는 게 아니라 책임을 넘겨주고 받는 형국이다.

이런 판국에는 솔직히 책임지는 놈만 바보 취급받는다.

얼마든지 책임을 피해가도 잘만 되는 축들이 숱하게 이웃하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도 책임을 안다는 것도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오로지 내 책임이 아니면 그만이질 않는가.

코끼리들의 우왕좌왕은 필자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 그것은 실은 여론형성 과정 같았다.

그랬었기에 곧 힘을 합쳐 우두머리를 공격 할 수 있었고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코끼리에게도 밀물 같은 여론의 힘이 있다는 것일까. 비록 그들만의 알 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바라보자니 흡사 오늘의 우리 현실에 던져지는 메시지가 무척 강하다.

그래서 그 장면들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여론'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세계적인 정치 칼럼니스트였던 월터 리프만의 저술이다.

리프만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한때 그의 칼럼은 25개국 250여 개 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지난 74년 작고할 때까지 60여 년 간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날카로운 혜안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냉전(cold war)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할 만큼 학구적인 저널리스트였다.

이 책이 쓰여진 것은 1922년. 당시 매스미디어라곤 신문, 잡지, 라디오가 고작인 시절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진가는 TV가 요동을 치는 지금도 여전히 맹위를 떨칠 정도다

훌륭한 정부라면 상상력이 풍부한 지도자들과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계발된 여론에 의존한다는 그는 따라서 어떤 정책의 결정과정에 있어서 믿을 만한 정보의 결핍은 치명적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 즉 여론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관계 학문이나 언론계에서는 이미 고전이 되다시피 한 이 책은 지난 73년 비로소 우리나라에서 번역됐지만 아쉽게도 그것마저 지금은 절판이 돼 번역본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흠이다.

서점에는 재고가 없다.

필경 도서관에서 구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지금 자고 나면 여론 운운하는 우리의 처지가 일부 딱하기도 해서 과연 건강하고 진정한 여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좀은 딱딱하지만 읽을 만하다.

억지로라도 읽고 나면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신감도 생긴다.

판단에 대한 자신감 같은거라고나 할까.

여론에 대한 리프만의 지적은 따갑다.

리프만은 여론의 비합리성과 그 합리적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일반민중은 진정한 현실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뉴스등의 자극에 반응하여 결국은 편향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우매한 다수의 지배보다는 식견과 광대한 마음을 지닌 이성인 사이의 대화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생명이라고 강조하고 이것이 바로 여론임을 이 책 곳곳에서 적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여론에 대한 정의와 의식은 어떤가. 비단 작금의 탄핵정국뿐 아니라 웬만한 정치이슈만 해도 그냥 '좋은가 나쁜가' 이분법적으로 묻고는 %에 사로잡히는 신세들이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직을 '화려한 비참(A Splendid Misery)'으로 묘사했다.

흡사 우리는 지금 그 묘사에 여론조사를 당하는 모양새는 아닌지 곰곰이 궁구해 볼 일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