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결핵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예술가' 이상의 소설 '날개'는 해가 들지 않는 서울 어느 동네 33번지 구석방을 무대로 한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속에서 참 여러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구금됐던 이상은 건강이 악화돼 보석으로 출감했으나 1937년4월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한다.

지병인 폐결핵이 28살의 천재를 앗아간 것이다.

그의 소설 '날개'는 1930년대 일제치하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결핵이라는 만성적 소모성 질환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마음껏 움직여지지 않는 작가 자신의 암울한 심정을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상의 유골은 귀국해서 같은 시기에 숨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과 함께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안장됐다.

김유정도 폐결핵이었다.

결핵은 해방이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무서운 질병이었다.

빠른 공기 감염에다 백신조차 제대로 없었던 가난했던 시절, 비위생적인 환경과 영양결핍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래서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병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도 결핵퇴치기금 모금을 위한 크리스마스 실이 1904년에 만들어진 것만 봐도 인류의 결핵은 인류의 오랜 공적이 있다.

▲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으나 결핵은 여전히 무서운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결핵환자는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0억명에 이르고 있고 연간 200만명이 사망한다.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는 2002년 인구 10만명당 결핵사망자가 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중 1위다.

일본(1.8명)의 3.9배, 미국(0.3명)의 23.3배에 달한다.

2002년 우리나라 질병 사망원인 10위를 차지했다.

▲국내 결핵환자는 22만여명으로 추산되며 지난해 보건소나 병원에서 결핵진단을 받고 신고된 신규 결핵환자만도 3만687명, 인구 10만명당 64명이었다.

60세 이상 노령자가 가장 많았고 2위는 20대였다.

특히 새 환자의 남녀 비율이 1.6대1로 매년 남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가운데 20대만큼은 남녀가 1대1로 같은 비율을 나타냈다.

여성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20대 여성 결핵환자의 증가는 심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 면역력 결핍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내성 강한 변종 결핵균도 새로 창궐하고 있다고 하니 오늘 '세계 결핵의 날'에 경각심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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