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강산상봉> 단체상봉 이모저모

제9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이뤄진 1일 금강산 온정각에는 반세기 넘게

헤어졌던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기쁨과 회한이 서로 뒤섞였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국민의 관심은 낮아졌지만 한 가족, 한 가족이 소설 한 권

분량 이상의 사연을 안고 마주 앉았다.

꿈에나 그리던 가족을 만난 이들은 때로는 통한의 눈물을 쏟으며, 때로는 환한

웃음을 지우며 분단이 앗아간 혈육의 정을 나눴다.

0..남측 최고령자인 조 씨(99) 할머니는 북측 아들 최종훈(71)씨가 번호를 확인

하고 다가오자 눈물을 글썽이며 휠체어에 의지한 채 몸을 떨었다.

최씨는 "어머니 제가 왔어요"라고 외치며 다가와 노모의 어깨를 부여잡고 흐느

꼈다. 최씨는 남측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들먹이며 "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말하고 듣기가 불편한 조 할머니는 어느 새 머리가 하얗게 센 아들의 두 손을

꼭 잡고 깡마른 입술을 움직이고만 있었다.

0..북에서 국제농구심판을 지낸 권석기(74)씨는 훈장 16개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는 큰형 봉기씨의 생사를 묻는 남측 가족들의 질문에 "형님은 의학교수에 미

생물학 박사"라고 자랑하며 "원래 형님이 와야 하는데 겨울에 천식이 심해 못나왔다

"며 아쉬움을 전했다.

남측 동생 경숙(66)씨는 "30년전 오빠가 국제심판을 하는 것을 보고 살아 있다

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 뒤 "봉기 오빠가 건강해야 할 텐데.."라며 울먹였다.

이에 석기씨가 "울기는 왜 우느냐. 54년만에 피붙이를 만난 이 기쁜 날을 눈물

로 보내면 어떡하느냐"며 여동생을 달랬다.

0..평소 입버릇처럼 여군이 되겠다고 하다 6.25전쟁때 의용군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자원했던 김명순(70)씨는 남쪽 동생과 재회의 기쁨을 맛보았다.

여동생 덕순(66)씨는 "여자형제가 많아 언니가 입 하나 치우려고 군대에 자원했

던 것 같다"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명순씨는 막내 여동생 말순(62)씨가 6∼7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

내는 형편이라는 말을 전해듣고 목이 메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0..의용군으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던 북측 형 오정세(74)씨를 만난 동생 만세(58)

씨는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누나 이야기를 전하며 흐느꼈다.

만세씨는 "누님이 살아 계시더라도 거동이 불편해 이번 행사에 올 수는 없었겠

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형님 얼굴이라도 보려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돌아가시

는 순간까지 형님 이야기를 하셨다"고 울먹이면서 형의 손을 부여잡았다.

0..북측 형 홍성표(74)씨를 만난 남측 동생 현표(73)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빛

바랜 흑백사진을 형에게 보여주었고, 성표씨는 사진을 보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현표씨는 "아버지께서 평소 형 얘기를 하지 않다가 임종하실 때 형님 이름을 세

번 부르셨다"며 울먹였다.

성표씨는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 듯 "아들은 행복합니다"라고 외치며 부모님의

사진을 놓지 않았다.(금강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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