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회식을 하면 철저한 '더치 패이(Dutch Pay)' 원칙을 고수합니다. 능력급 비중이 높다보니 과장이 차장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등 직급과 '페이'의 불일치 현상이 심화됐어요. 그러니 '상급자 계산'이 사라졌죠. 임금체계의 변동은 여러가지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계열사 대구 주재원의 얘기.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회사 분위기, 그리고 월급쟁이들의 생활방식까지 바꿔놨다는 것이다.
성과주의 바람은 보수적이라는 대구.경북지역 기업에도 강하게 불고 있다. 그리고 성과주의 임금에 대한 찬반논란도 이 바람에 함께 실려오고 있다.
▨성과주의 임금은 대세?
대구지역에서는 가장 이르다고 할 수 있는 지난 1998년, 전직원 연봉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한 자동차 부품업체 평화산업. 이 업체는 유럽 유명 자동차 업체에 납품을 하는 등 회사가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선 이유와 관련, 성과형 임금제도를 들었다.
이 회사는 계열사별, 부서별, 개인별로 고과를 매긴 뒤 직원별로 최대 2배까지 인센티브 차이가 나도록 하고 있다.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회사는 기본급이라는 단어를 아예 없앴다. 성과형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라는 것.
이 회사 김귀식 부사장은 "매년 매출이 늘고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며 "이는 임금 메리트에 자극을 느낀 직원 개인의 생산성 향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은행은 올 해 성과관리 컨설팅을 통해 개인업적 평가 시스템을 도입, 내년부터 성과형 임금제도를 확산시킬 방침이다. 현재는 극소수 간부사원에 대해서만 연봉제를 실시하지만 직무분석 시스템이 갖춰지면 성과주의 임금 적용 대상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은행은 이를 통해 회사의 수익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아백화점은 직원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올 해부터 개인별 고과 측정지표를 더욱 세분화하기로 했다. 개인별 고과를 정확이 매겨 실적만큼 성과급으로 보상하겠다는 것. 결국 금전으로 보상되는 목표의식이 회사의 영업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미.
경쟁업체인 대구백화점도 사실상 '무늬만 연봉제'를 탈피, 올 해부터는 5등급 제도를 본격화한다. A.B.C.D.E 5등급으로 개인별 고과를 매겨 A.B는 더 얹어 주고, C는 그대로, D.E는 연봉을 깎겠다는 것이다.
유규창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29일 대구에서 열리는 생산성협약임금제 관련 발표문을 통해 "한국기업은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상승때문에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근로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 시스템을 정립해야 기업이 산다"고 주장했다.
▨성과주의 임금 무용론
자동차 부품업체인 평화정공. 이 회사는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지만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일부 기업들로부터 '전근대적' 제도로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는 호봉제를 바꿀 의향이 지금으로선 없다고 했다.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천200억원에 이어 올 해 매출도 1천500억원이 무난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엔 2천억원까지 매출을 늘려잡고 있다고 전했다. 임금체계 때문에 생산성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 장원근 재무팀장은 "성과형 임금제도는 우리 근로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제대로된 고과 평가가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근로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게되고 오히려 생산성이 나빠지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소문난 알짜 회사 대구도시가스. 이 회사 역시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 회사 박종률 기획.홍보과장은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실시하는데 있어거 가장 큰 걸림돌은 직무분석"이라며 "제대로된 직무분석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임금제도에 손을 댄다면 회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실시하는 대다수 기업이 '나쁜 부서'로 가지 않으려는 직원들의 저항에 부딪혀 제대로된 인사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철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책기획국장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산업현장에서 고용의 유연성, 임금의 유연성 정책이 확대되고 있다"며 "고용의 유연성은 비정규직, 임금의 유연성은 연봉제.성과급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노사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어 결국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형 임금제도가 확산된다면 근로자간 경쟁의 심화로 기업내 협업기능이 깨지면서 생산성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망과 과제
올 해부터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이 더욱 가열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시간이 준 만큼 이러한 근로시간 손실분을 다른 곳에서 만회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바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성과주의 임금체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지역 상당수 중소기업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이철수 이화여대 교수에게 의뢰,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연봉제와 집단 인센티브제 도입을 확대, 근로의 질을 높여야한다는 것.
학계 보고서도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비용이 다른나라와 비교할 때 크게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수철 한국생산성본부 책임전문위원은 "선진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들도 생산성에 기초한 임금체계로 변모하고 있다"며 "노사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식을 찾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정착을 위해서는 사원 개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한다며 면담 등을 통한 노사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부터 시도되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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