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긴 여운. 가슴깊이 파고 드는 호소력을 가진 전통악기 징.
저음의 파장으로 우리에게 푸근함을 전달해 흔히 여성 또는 어머니에 비유되는 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또 한국전쟁 이후 스테인리스 그릇에 밀려 서서히 사라졌다가 최근 임금님 수랏상 등으로 인기를 되찾고있는 놋쇠 세숫대야, 양푼, 요강, 수저 등 방짜(方字)유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대정(대장장이의 우두머리)중의 한 분인 김일웅(64.경북무형문화재 제9호) 명인을 찾았다.
김 명인은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방짜 징과 유기를 제작하고 있다.
김천시내에서 지례면 쪽으로 가다 양천동에 있는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따라 50여m 들어가면 김 명인의 공방인 고려전통농악기(김천 고려방짜)가 있다.
"방짜유기 만드는 일을 체험해 보고 싶다"고 하자 김 명인은 "일이 힘들고 징이든 유기든 완성품 하나 만드는데 이틀이나 걸리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다시 한번 부탁하고서야 겨우 징 만드는 공정에 참여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벌겋게 익은 얼굴, 숯덩이 같은 투박한 그의 손이 이 일의 어려움을 전한다.
징 만드는 작업공간은 불과 20여평 남짓이다.
비가 와서 다소 쌀쌀한 날씨지만 1천200~1천300℃의 용광로 불길에 금세 땀이 흐른다.
"처음엔 불 지피는 일부터 배워야 해. 온도 높이는데만 6시간 정도 걸리지. 여기서 기술없이 할 수 있는건 놋쇠를 녹이는 용광로에 불때는 풍구잡이 일밖에 없어".
그러나 그는 10년에 걸쳐서도 다 배우기 힘든 일을 하루만에 모두 알려주겠다고 한다.
징 1개를 만드는데는 이틀이 걸리지만 2개를 동시에 만들면 하루가, 3개를 만들면 2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놋쇠물을 부은 징틀(바디기 판)에서 굳은 놋쇠(바디기)를 꺼내 얇게 펴는 도듬질을 할 때 여러 개를 포개면 열이 식지 않아 작업이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재료섞기
첫번째 일은 놋쇠 재료인 주석과 구리를 28대 72의 비율로 정확히 섞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용광로에서 1천여℃의 온도로 끓인다.
이때 주문에 따라 금과 은을 넣기도 한다.
금과 은을 넣으면 징 소리가 맑고 쇠가 질겨진다.
하지만 값이 비싸다.
이어 끓는 놋쇳물을 긴 쇠바가지로 퍼 바디기 판에 붓는다.
그전에 판에 놋쇠가 붙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돼지비계 기름을 바른다.
쇠바가지로 놋쇳물을 풀 때는 그 열기와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불똥도 튀기 일쑤여서 잔뜩 긴장해야 한다.
놋쇳물을 바디기에 붓는 양은 특대.대.중.소 등 징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5~4kg 정도다.
반면 꽹과리는 약 500g.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김 명인의 '감'은 정확하다.
용광로 일이 있는 날(일주일 1, 2번)은 바디기 판에 놋쇳물을 붓는 일만 하루 종일 반복해 100여개의 바디기를 만든다.
@도듬질-'바디기'펴기
이제는 판에서 꺼낸 바디기를 때려서 펴야 한다.
큰 집게로 바디기를 잡고 달궈가며 망치질 하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혼자 25kg이나 되는 특대 징을 만드는 일도 더러 있는데 웬 엄살이야". 핀잔이 날아온다.
"쩡, 쩡". 수도 없이 내리쳐 보지만 놋쇠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얼마나 쳐야 징 소리가 제대로 날까. 숙련된 솜씨로 1천번은 내리쳐야 징 형태가 된다는 말에 이내 두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김 명인은 쉼없이 망치질을 하더니 어느새 놋쇠를 곱게 펴 징 형태를 만들어낸다.
어느 정도 펴진 바디기를 건네주며 다시 펴 보라고 한다.
"놋쇠가 달았을 땐 고무같지만 식으면 유리 같으니까 조심하라"는 그의 당부가 떨어지기 무섭게 곱게 펴진 바디기를 깨고 말았다.
@담금질
도듬질이 끝나면 강도를 조절하는 담금질이다.
징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이렇게 기본형태가 끝나면 곤망치로 두들겨 풋울음을 잡는데 쇳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 징 소리가 전혀 나지 않을 걸. 나도 징 소리를 내는데만 5년이 걸렸어". 그는 묘한 미소를 보낸다.
풋울음을 잡은 후 징의 눈썹인 태문양을 돌려 새기고 구멍을 뚫어 끈을 맨다.
끈을 매면 소리가 또 달라지는데 다시 두들겨 재울음을 잡으면 작업 끝.
@재울음 잡기
소리의 높낮음을 잡는 재울음 일은 수십년된 고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일이다.
그의 전수장학생인 둘째 아들 형준(32)씨도 일을 배운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재울음 잡는 건 서툴다.
재울음은 망치질 한번으로도 딴판의 소리가 나는 예민한 작업이다.
이런 모든 일들은 공식이 없다.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꽹과리는 쇳소리를 내면 되지만 징은 쇳소리를 없애줘야 해. 그만큼 힘들지. 쇳덩이에서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면 밤샘 작업의 피로는 한순간에 날라가. 이게 내가 54년 동안이나 이 일에 매달려 있는 이유이기도 해".
그 인고의 세월을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6.25전쟁 무렵 징 한개 값이 쌀 3가마니 값과 맞먹을 때도 있었어.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초기엔 풍기문란이란 이유로 징을 아예 치지도 못하게 했지. 그러다 새마을운동이 확산될 무렵 각 마을마다 징을 구입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어".
그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혼을 불어넣는 이 일이 좋다"며 "누구나 꺼리는 일을 아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어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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