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악스런 까마귀 소리에 눈을 뜬다.
멀리 검푸른 아라비아 해의 수평선이 천천히, 감빛으로 젖어온다.
인구 천만이 넘는 거대한 무역도시 뭄바이의 하루가 열리고 있다.
잔잔한 바다 위에 한가롭게 정박해있는 하얀 유람선과 닻을 내린 고기잡이배들. 해변 도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며 고딕식 건축미를 한껏 뽐내는 타지마할 호텔과 영국왕 조지 5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석조 아치형 인도 문.
그러나 그런 서구 문명적인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산책로 곳곳에는 누더기를 걸친 걸인들이 모포 하나 없이 포석이 깔린 찬 길바닥에 누워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불운한 생명과 허기가 그들이 가진 전부다.
어쩐지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간 듯 음산한 풍경이다.
그 위로 아침을 맞은 수많은 까마귀들이 소란스럽게 까옥대며 도로 옆 시멘트 난간에 내려앉는다.
자전거에 곡식 포대를 싣고 온 남자가 까마귀들에게 모이를 뿌려준다.
나는 인도문 옆 돌담에 기댔던 몸을 일으킨다.
노상에서 밤을 새운 탓에 온 몸에 피곤이 엿기름처럼 남아 있다.
이제 일출이 시작되는 아라비아 해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숙소를 찾아 여장을 풀고, 먼지와 매연에 찌든 몸을 씻어야 할 것이다.
인도문과 가까운 꼴라바 거리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과 여관,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한 시간 남짓 꼴라바 부근의 숙박업소를 뒤진 끝에 겨우 찾아낸 알 하자즈(Al-Hijaz) 호텔에 여장을 푼다.
상가 3층에 위치한 호텔은 말이 좋아 호텔이지, 우리네 시골여인숙만도 못하다.
사실 서울에도 이런 곳은 있다.
쪽방이라거나 고시원이라 이름 붙은 값싼 숙박처들. 도시는 날로 팽창하고 땅값은 치솟고, 돈을 벌려고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곳.
그런 숙소들처럼 알 하자즈 호텔 내부엔 어깨가 끼일 만큼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흰색 나무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다수 인도의 숙박업소가 그렇듯 계단으로 난 출입통로 외 비상구라곤 전혀 없다.
화재라도 만나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인도의 신들에게 운명을 맡겨두는 게 마음 편하다.
게다가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500루피(한화 1만5천원 정도). 그나마 어렵사리 200루피나 깎은 것으로 주변 호텔보다는 싼 가격이다.
인도의 숙박업소는 허름한 시설에 비해 기재할 사항이 많다.
국적부터 시작하여, 나이, 직업, 여행목적, 체류기간, 출발지, 목적지, 또 여권 발급처와 발급일자에다 비자번호에 유효기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입해야 한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옥처럼 창문 하나 없는 두 평 남짓한 실내는 그냥 2인용 목재 침대 하나에 천장형 선풍기, 벽에 걸린 조악한 반신 거울이 전부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여긴 인도인 것이다.
나는 화장실을 겸한 공동세면장에서 씻는 둥 마는 둥하고 돌아와선 곧장 낡은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든다.
밀렸던 피로와 졸음이 거센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목을 조르듯 끈끈한 더위로 잠이 깬다.
어두운 방안과 달리 바깥에선 크고 작은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오전 11시다.
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차린다.
2층으로 내려가는 어둑한 층계참에 얼굴이 가무잡잡한 중년여자가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 하고 있다.
석유버너를 피워놓고 철판에다 짜파티(인도식 주식)를 굽고 있는 중이다.
아마 점심을 준비하는 성싶었다.
그러고 보니 좁은 층계참에 스테인리스 물통을 비롯한 몇 가지 살림 도구들이 포개져 있다.
그리고 반쯤 쳐진 커튼 안에는 세 사람이 더 있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까지 있다.
한 평도 안될 층계참이 한 가족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인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내가 들여다보자 여인이 활짝 웃으며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나는 방 한 칸 없이 협소한 층계참을 빌려서 살고 있는 여자네 가족이 보여주는 가식 없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 웃음을 받아들이기가 외려 어색하다.
인식의 뒤틀림에서 생기는 부조화한 느낌일 것이다.
인도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지만, 소유와 행복이 무관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바깥은 늦여름처럼 햇살이 무척 따갑다.
나는 꼴라바 거리 뒤편의 시장 초입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른다.
실내는 텅 비어 있다.
나는 즉석에서 압축기계로 즙을 짜주는 생과일 주스와 토마토를 끼운 베지터블 샌드위치로 아침 겸 점심을 에운다.
레스토랑을 나온 나는 무작정 이리저리 거리를 돌아다닌다.
어느 나라엘 가든 나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뒷골목 시장통을 더 찾아다니는 편이다.
박제되고 관광 상품화된 유적지보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이 내겐 더 관심 있고 흥미롭다.
시장에는 질척한 삶의 풍경과 서민적 활력과 사람간의 끈끈한 교류가 있다.
생활의 질량이 느껴지는 저잣거리는 그 자체로 현재진행형의 야사(野史)다.
거칠 것 없는 발길은 어느새 고깃배가 드나드는 어항으로 이어진다.
고기 비린내와 함께 유기체가 썩어가는 칙칙한 악취가 풍기는 어항에는 남루한 사리를 걸친 여자들과 남자들, 아이들이 군데군데 모여 앉아 고기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패류를 다루는 건 인도에서 제일 천민들이 하는 일이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할 아이까지 일에 동원된다.
다들 묵묵히 새우껍질을 까거나 칼로 고기비늘을 다듬거나, 생선을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해 얼음조각을 나른다.
그들에겐 그게 평생 주어진 일이다.
어쩌면 대를 이어가며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한쪽에선 출항을 준비하며 뱃머리에 화환을 갖다 걸고 향을 꽂아 사른다.
그건 신에게 축복을 비는 의식이다.
나는 주마간산 식으로 여왕의 목걸이라고 불리는 마린드라이브 해안과 고층 빌딩들이 늘어선 초파티 해안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본다.
실은 난 이런 현대적이고 서구 문명적인 인도를 보고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어쨌든 뭄바이는 인도 속의 또 다른 인도인 것이다.
뜻하지 않게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무어의 한숨'이란 소설 속에 나오는 묘사가 떠오른다.
'악마의 시'란 소설로 유명해진 인도 작가 살만 루시디는 '무어의 한숨'이란 책에서 뭄바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뭄바이는 중심이었다.
처음 생길 때부터 그랬다.
포르투갈과 영국의 피가 반반 섞인 사생아. 하지만 그러면서 뭄바이는 인도 중에서 가장 인도다운 도시. 뭄바이에서는 인도의 모든 것이 만나고 합쳐진다.
뭄바이에서는 온 인도가 인도 아닌 것들과 만난다'(생략).
뭄바이는 어지러운 꿈같은 도시다.
서구의 여타 도시들처럼 온갖 욕망과 물질적 욕구, 고통과 변화가 아라비아 해를 끼고 부유물처럼 넘실거린다.
인간의 꿈을 먹은 도시는 나날이 비대해진다.
넓거나 비좁은, 또는 더럽거나 낡은 거리는 생활의 오수로 넘쳐나고 고통과 혼란, 끝없는 소비와 개인주의만 남는다.
꿈은 깨어나지 못하면 한없이 고통스런 기억이 된다.
난 한시 바삐 뭄바이를 떠나기로 한다.
도시는 여행자에게 피곤한 곳이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을 먹고사는 또 다른 이름의 연옥이기 때문이다.사진: 천천히 감빛으로 열리는 아라비아해의 고즈넉한 풍경.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