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런시각-블로그

아침에 일어나면 졸린 눈을 비비며 컴퓨터를 켜고 내가 만들어 놓은 작은 놀이동산에 입장한다.

이웃들의 집에 놀러가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웃고 나온다.

일상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주고, 헐거워진 내 삶도 조여 놓는다.

이름과 주소는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나의 이웃들. 그들은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영어로 이루어진 그들의 거처, 무슨 말인지 모를 한글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름. 매트릭스 공간 안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서로 이웃하며 이진법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요즘 나도 그들처럼 살고 있다.

'chosinege'라는 주소에 '지중해'라는 문패를 달고,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집안을 둘러보고 쓸 만한 것을 가져가면서 자신 있게 왔다 간다는 흔적을 남기는 주소불명, 신원미상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뒤를 캐면서 하루를 은밀하게 보내고 있다.

수십 권의 책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가 쌓여 있는 곳, 수십 번의 콘서트보다 더 많은 가수와 그룹이 공연하는 곳, 수십 번의 전람회보다 더 많은 그림과 조각이 전시되는 곳, 앞으로 10년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인터넷에서 배웠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장소는 오프라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채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21세기에는 존재하는 세상은 꺼진 세계이고,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켜진 세상이다.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깨어 있는 흉포한 세계 안에서 나는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블로그를 온(ON)하고 있다.

정초신(영화감독)

커뮤니티가 응집.폐쇄.공유였다면 개인 미디어로서의 블로그는 개인.일상.우연이 만드는 찰나적 관계가 강화된다.

블로그에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래알같이 흩뿌려진 '개인'의 공간들이 전제가 된다.

기존의 개인 홈페이지가 인터넷에서 '섬'과도 같았다면, 인터넷 포털이 제공하는 공간에 자기 집을 짓고 있는 블로거(blogger)들은 거대한 커뮤니티의 일원쯤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 소속감을 부여하는 매개체는 커뮤니티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와 집단(사회)에 대한 소속감이란 양면성을 통해 자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처럼 형성되는 파편적 관계가 포스트모던 사회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미니 홈피는 가장 극단적인 표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는 합리성에 기반한 이성적 가치보다 개인의 경험적 현실이 중요해진다.

공동체적 소속감과 개인의 감성이 부각되며, 미래의 번영보다는 현재,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

개인의 일상이 사회적 현상이자 코드로서 읽혀지고, 사적 공간에 머물던 개인의 이야기가 공적인 영역에서 가치화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의 일기는 자물쇠로 채워지지 않고 인터넷 파도를 타고 수많은 네티즌의 안방에서 읽혀진다.

사람들은 정치참여를 위해 광장으로 가지 않는다.

안방에서 클릭으로 참여함으로써 공론의 공간은 개인의 소유물이 된다.

미니 홈피는 현대의 사회적 관계를 정당하게 설명해준다.

블로그 현상은 개인, 외적 이미지, 일상, 커뮤니케이션 등 현대사회의 시대적 코드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지영(미디어이랩 연구소장.ㄱ신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