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그리운 얼굴

조태일(1941∼1999) 시인은 전남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마지막 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를 비롯하여 여덟 권의 시집을 냈다.

시집 '식칼론', '국토', '가거도' 등으로 잘 알려진 그의 시들은 과거 암울한 시대에서 굴하지 않는 저항의지의 표상이었다.

90년대 초반 들어 보여준 변화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시인의 시선이 점차 자연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노래하는 대상의 대부분이 자연이라는 점, 그것을 시로 풀어 가는 형상화 과정이 과거의 정치적 상상력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점차 자연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시인을 만나게 된다.

그가 이 마지막 시집을 낸 것은 죽음을 불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이다.

어쩌면 아이가 되어버린 그는 저승에 가 있는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식칼론'의 '간추린 일기(日記)'를 보면 "내 유서를 20년쯤 앞당겨 쓸 일은/1999년 9월 9일 이전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실제 죽음에서 불과 이틀의 오차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발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세상과의 이별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어머니'는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뛰어넘어 삶과 죽음, 혹은 그것의 경계를 두루 살펴보는 혜안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그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 모습은 삶에 다가 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죽음에 다가 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가 가 있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는 자연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연민, 현실 표면에서 감춰진 곳, 소외된 지역과 그곳의 사물에 관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는 어머니를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발견해내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나는 시인이자 스승이셨던 조태일 선생님을 그리워한다.

안희철(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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