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사회 집중해부-"민본적 실사구시가 화두"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제시하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유럽 중도좌파 정치가들의 이론적 배경이 돼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제3의 길'.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 모델인 제3의 길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제3의 길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통합시킬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가. '한국사회의 변화와 제3의 길' 집담회에서는 제3의 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부터 그 평가 및 수용 방안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제3의 길을 논의해야"=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제3의 길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를 한 교수는 "과거와 같은 흑백논리, 제로섬 게임, 대결 위주의 승자 독식 체제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 체제를 관리하기가 어려울 만큼 사회전체의 힘의 관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볼 만한 화두가 제3의 길"이라며 "제3의 길을 외부의 사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능성으로서, 예컨대 민본주의적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에서, 논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제3의 길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국가개입으로 정의와 평등을 확보하자는 국가주의의 대립을 넘어 제3 부문으로 통하는 시민사회의 역동성에 주목해 국가-시장-시민사회의 3각체제로 특징되는 새로운 협치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교수는 "특히 동아시아의 성장과 발전, 문화적 전통의 깊이를 생각하고 서구 모더니티의 한계를 응시할 때, 문명적 대안으로서의 제3의 길을 생각해봄직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제3의 길이 성공하려면 나눠먹기 식의 정책을 넘어 갈등해온 집단들의 상호협력으로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뚜렷한 발전목표, 개혁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즉 생산과 복지, 안정과 효율을 유기적으로 접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3의 길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조건의 하나로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개혁지향적 중산층의 역할도 언급했다.

한 교수는 "제3의 길이 성공하려면 문제 해결의 구체적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며 "분열대신 협력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장치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며 아울러 이런 기반 위에서 국가경쟁력 또는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이 실효를 거둬야만 제3의 길이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진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더불어 사는 역동적인 참여사회의 건설, 여기에 제3의 길의 비전이 있다"면서 "이런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기반은 인간존중의 가치관에 있다"고 얘기했다.

▲한국식 제3의 길은=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우리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모델 중 하나로 '제3의 길'이라 불리는 신사회민주주의를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이 기획은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는 시장의 활력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복지프로그램을 동시에 제고하려는 전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문제는 이 전략이 성장과 분배, 혁신과 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으며, 우리 현실에 과연 얼마나 적실성을 갖고 있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기획을 실험해 온 서구사회에서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 우리사회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조건 아래 여전히 놓여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구식 제3의 길을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로 삼아야 한다고 밝힌 김 교수는 한국식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두 가지 사항을 제안했다.

그는 "우선 이념과 이와 연관된 정책 논쟁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때로는 이슈를 예각화하고 대안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 대타협'으로서의 새로운 사회협약이 모색돼야 한다"며 "자본과 노동,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 사이의 한국적 대타협을 모색하는 것, 바로 여기에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념의 새로운 길이 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역량 강화해야"=한상진 울산대 교수는 "한국과 같은 발전도상국, 신흥공업국에게도 제3의 길은 긍정적일 수 있다"며 "그렇지만 지구적 수준에서의 제3의 길 논쟁은 지나치게 협소한 신 노동당의 정책 관점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추상화된 기든스의 이론적 관점도 뛰어넘는 재개념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3의 길이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제3부문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연계 복지체계 자체의 개선은 물론, 제3부문 스스로의 역량 강화도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또 한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제3부문 자원조직들의 자발적 시도들이 이뤄지고 지구적 차원으로 연대될 때, 사회적 경제에 의해 지구화와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해 나가는 지구적 제3의 길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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