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바! 라이프-삼성라이온즈 2군

태풍 디앤무(DIANMU)가 한반도로 북상하던 지난 17일 경산 삼성볼파크 실내훈련장. 모기장처럼 생긴 네트 안에서 삼성라이온즈 선수단 20여명이 연신 땀을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비를 핑계삼아 하루 쉬어도 좋으련만 그들 사전에는 휴식이란 없었다.

삼성라이온즈 2군 선수들. 프로야구의 화려함 뒤에서 묵묵히 밝은 내일을 꿈꾸며 뛰는 유망주들이다. 내야수 박석민(19)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1군 경기와 선수들만 취재해온 기자들에 대한 경원감이랄까, 소외감이랄까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프로야구 2군은 1군에 비해 구단의 대우 등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이 뚜렷하다. 2군 선수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2천만원. 연봉도 연봉이지만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신분에 대한 불안이다.

1군 선수들은 부진하면 2군에 잠시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2군 선수들의 경우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퇴로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일의 희망을 붙들고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2군이 원정경기에서 받는 서러움은 더욱 확연하다. 숙소도 호텔이 아닌 여관에 묵고 식사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연습량은 1군보다 훨씬 많고 시합도 연습으로 간주할 정도로 힘들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1군에 올라가 뛰는 것이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2군들에게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5년차인 투수 박영진(25). 프로 입단 첫 해인 지난 2000년 1군에서 뛰었던 경기는 20게임이 전부다. 성적은 1승2패1세이브. 프로 데뷔 첫해 오른팔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아직도 2군에 남아있다.

그는 "간혹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까지 뭐했 하나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를 때도 있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고 있지만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님을 알 수 있다.

박영진은 20살 때부터 시작한 술.담배가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많을 때는 하루 2갑까지 피운 담배로 인해 몸이 많이 상했다는 것. 신인 때 만난 아내와 3년전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그는 "스트레스 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가 '너무 힘들면 그만두라'고 말을 하지만 미련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옛날처럼 1군에서 뛰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2군 선수 30여명 중 5년차 박영진은 고참에 속한다. 대부분 1∼3년차다. 과거에는 고참들도 많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신인급 선수들로 대폭 면면이 바뀌었다.

구단은 고졸 선수는 3년, 대졸선수는 2년 가량 지나서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냉정하게 방출한다. 매년 신인이 10여명씩 입단하기 때문에 그 숫자만큼 빠져나가야 적정 인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힘든 현실을 감안, 최근 삼성구단 측은 2군들을 위한 다양한 사기 진작책을 쓰고 있다. 올 시즌부터 2군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수훈 투수와 야수를 선정하고 월간 MVP도 뽑아 시상한다. 1군 경기에 출장할 경우 수당도 지급한다.

하지만 올 시즌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와 나름대로 자리잡은 선수는 내야수 박정환(27)과 김승관(28) 정도만 손에 꼽힐 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를 가장 좋아해 그의 스윙을 보고 따라한다는 외야수 임세업(21.입단 3년차)은 입단 후 1군 경기는 아직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는 "3년 동안 1군 경기에서 못 뛰었는데 올해는 대구시민야구장에서 뛰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외야수 곽용섭(21.2년차)은 "빨리 1군에 올라가서 자리잡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털어놓았다.

내야수 손주인(21.3년차)은 "1년씩 계약을 하기 때문에 장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야구를 그만 둔 친구들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우리를 부러워한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함께 장래를 고민하고 힘들게 훈련을 받는 만큼 2군 선수끼리의 단결력은 대단하다. 함께 고생하던 동료가 1군에서 큰 활약을 펼치면 2군 선수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한다.

1995년 입단 후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낸 내야수 김승관이 지난달 25일 LG전에서 1군 데뷔 이후 첫 홈런을 터뜨리는 것을 지켜보던 2군 선수들은 숙소가 떠나갈 듯 기뻐했다.

유동효 2군 매니저는 "현재는 비록 힘들지만 2군 선수들의 가슴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정과 희망이 있다"며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지금은 진흙밭을 뒹굴지만 내일의 주인공을 꿈꾸는 2군 선수들. 그들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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