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조국의 원수들…"

내일 모레면 호국의 달 6월도 끝난다.

뜯겨나가는 달력과 함께 6.25 참전용사의 무용담, 54년이 지난 지금까지 병상에 있는 상이용사의 고통같은 기사도 자취를 감추고 내년 이맘때까지는 또 그렇게 잊고들 살 것이다.

6월을 보내며 '잊혀져 가는 전쟁' 6.25를 두고 두어가지 의문을 가져본다.

불과 5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민주국가라는 동질사회 안에서도 왜 계층별로 이토록 상반되게 갈라지고 있는가 라는 것.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통합된 인식을 갖는 것이 옳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며칠전 신문광고에 실렸던 '6.25 노랫말'부터 떠올려보자.

'아-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이 노래를 지난날의 어느 정권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없애버렸다.

노랫말 속의 '원수'들에게 쌀도 줘야하고 '원수'들이 서울 한복판에 초대돼 미군 철수를 공공연히 외쳐대도 함께 잔을 들어 건배를 해야하는 세상이 됐으니 이젠 '원수'니 전쟁얘기 같은 건 좀 잊어야 한다고, 아니면 기억 못하게 해야된다고 생각해선지는 알 수 없다.

어제의 전쟁을 이유로 동족이 끝없는 원한속에 갈등만 끌고 가는 것은 불행이다.

언젠가 평화와 화해로 하나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비극과 상처는 빨리 잊어야 할 필요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잊어도 될만한 또는 잊어야 할만한 명확한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아직 그렇질 못하다.

남과 북, 심지어 남한 내부에서조차 통합되고 공감된 인식이 충분히 아우러지지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6.25 노래를 없애버린 교실에서 자란 세대부터 보자.

얼마전 대구시내 D중학교에서 전교생에게 6.25포스터를 그리게 했다.

어느 학생의 작품이 교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데.

그 작품에는 붉은색을 칠한 탱크 5대가 위쪽에 그려지고 파란색을 칠한 탱크 5대가 남쪽에, 그리고 가운데는 이런 표어가 씌어 있었다.

'6.25는 무효다 다시 한판 붙어보자!' 경험하지 못한 동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전자오락이나 PC게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계층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다른 윗세대 계층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주 '6.25 비상 구국기도 및 국민각성대회'라는 군중집회가 보수성향의 단체들에 의해 열렸었다.

그들이 낸 신문광고에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노랫말과 함께 "북한 공산주의의 마수(魔手)가 대학가 교육계 언론계 노동계 정치계 등 곳곳에 침투하여 의식화 시키고 민주, 자주, 개혁, 진보, 보안법철폐, 미군철수, 민족공조를 외치고 선동 선전하여 왔으며 많은 국민들은 그들에게 속아 친북.좌익으로 물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쪽 계층이 햇볕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했던 북한 지도부에 대해 반대쪽 계층은 그들의 6.25남침으로, 56만명의 국군과 5만4천여명의 참전미군, 300여만명의 국민들을 무참히 죽게만든 그 비극을 잊지말고 또다시 속지말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원수'와 '동족'에 대한 인식의 경계와 이해의 각도가 제각각인 셈이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같은 국가 안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 사이에 이처럼 갈래갈래 다른 시각과 생각들을 갖고 있는 나라는 분명 뭔가 손써야 할 틈을 가진 나라다.

따라서 본질은 6.25 전쟁을 잊고 안 잊고라던가 노랫말 속 '원수'란 단어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보관과 대북인식, 전쟁개념이 왜 이렇게 계층마다 저마다 따로여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어떤 세력이 있어 이런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을 함께 걱정하고 해법을 찾는데 있다고 본다.

마침 어제(27일)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었다.

기도 담화문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분단의 흔적들이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다고 우리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화해와 일치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남북화해에 앞서 이웃과의 화해, 지역간의 화해, 사회계층간의 화해를 생각해주십시오".

비록 노랫말 속에는 원수라해도 결국 그들은 사랑하고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동족이다.

그것이 현실이고 우리는 그들이 화해와 일치를 위해 스스로 망해버린 공산주의의 틀을 깨고 나와 새롭게 변해 나가도록 끈기있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경계는 게을리 않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우리 먼저 내부의 지역과 계층간 화해와 일치부터 이루어야 할것이다.

6월이 지나도 6.25에 대한 인식과 시각의 통합은 끊임없이 그런 쪽으로 나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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