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대마도 일화

5년전 1999년 1월에 발효된 신한.일어업협정의 피말리는 막판협상은 양국 외교술, 해양전문가들의 실력대결의 전쟁터였음을 기억한다.

당시의 쟁점은 '중간수역'의 동쪽한계선(날줄)과 대화퇴(大和堆) 오징어 어장의 문제였다.

우리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동해 동쪽의 날줄을 일본측 주장(동경 135도)과 우리 주장(동경 136도=독도기점 200해리 지점)중 어느쪽으로 긋느냐에 따라 연간 2만5천톤의 대화퇴어장의 향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론은 동경 135도30분, 일본 교토(京都)를 지나가는 날줄(세로줄)이었다.

덕분에 한국은 대화퇴어장을 한.일 '중간수역'에 집어넣어 오징어잡이를 계속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한국은 독도 역시 중간수역에 집어넣는데에 동의함으로써 훗날 말썽의 소지를 남긴다.

이후 일본은 그들 EEZ(배타적 경제수역)의 어자원은 아끼면서 이 '중간수역'을 아예 분할해서 갈라먹자고 달겨들고 있다.

일본외교는 이렇게 고(高)단수다.

고기와 땅(사실은 바다)을 슬쩍 바꾸자는 암수(暗手)다.

독자들이 까맣게 잊고 있을 한.일 어업협정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독도문제의 대칭점에서 엉뚱하게도(?) 대마도(對馬島)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원도내 몇몇 시민단체들이 최근 오는 8월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에 상륙, 태극기를 꽂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될까?

'대마도'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단어는 왜구.노략질같은 부정적인 것이다.

그것이 어느날 부산-대마도 관광선이 뜨면서 우리의 눈앞에 친근한 땅으로 다가와 있다.

대마도는 크게 상도(上島)와 하도(下島)로 나뉘며 그 사이의 폭(해협)이 좁아 지금은 우리 강화도나 거제도처럼 큰다리 하나로 연결된다.

부산에서의 항로는 불과 50㎞.

야사(野史)같은 이야기지만 실로 대마도와 '조선반도'의 운명적 관계를 따져보면 가슴이 뭉클하는 바가 있다.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 최익현 선생이 일제에 붙잡혀 그곳에 유배되고, 그곳 식량 먹기를 거부하고 굶어죽었다는 그 최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곳, 조선통신사의 통과지로서 지금도 8월이면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아리랑축제'가 열리는 그 대마도는 크게 두가지 점에서 '한국의 운명'을 바꿔 놓은 소위 '한류(韓流)'의 땅이다.

하나는 세종대왕 시절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 사건이요, 또하나는 1905년 대한해협, 바다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이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이종무에게 대마도 정벌을 명한다.

대마도를 거점으로 한 왜구의 노략질에 민심이 흉흉했던 것이다.

이종무는 그곳 도주의 항복을 받지만 "양식도 주고 도와줄테니 다시는 나쁜짓 말라"는 회유만 한채 병사 한명 남기지않고 철수한다.

먹을 것도 없고 관리하기도 힘든 척박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대마도를 일본땅으로 굳혀버리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될줄이야…. 그때 이종무의 정벌군이 계속 주둔했었다면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대마도를 조선침략의 거점(병참기지)으로 쓸 수도 없었을 터이요, 임진왜란의 진행방향도 크게 달라져갔을 터이다.

또하나, 러.일전쟁에 왜 대마도가 등장하냐고 할 터인데, 대마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조건이 바로 러.일전쟁 승패의 분수령이었음을 아는 한국사람은 드물다.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일본해군의 국운을 건 대해전(大海戰)에서 대마도가 없었다면 일본은 이길 수 없었고, 그랬다면 같은해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도 없지않았을까? 같은해 독도를 시마네(島根)현 고시로 '일본령 다케시마', 즉 죽도(竹島)라고 명명한 일본의 독도강탈 사건 역시 없지않았을까. '타임머신'을 타고가 본 추정이요 감회다.

1905년 5월 그때 러시아 발틱함대는 육전(陸戰)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듯 대한해협에서 일본함대에 달겨들었으나 아뿔사 일본전함은 눈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눈뒤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 넓은바다, 뒤쪽의 일본전함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것인가. 그들은 바로 대마도 두 섬사이의 해협, 지금은 다리가 놓인 바로 그 좁디좁은 해협에 쥐죽은듯 숨어있다 발틱함대의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그래서 대마도가 한국의 역사를 바꿨다는 것이다.

외교는 실리와 명분의 전쟁이다.

"일본해냐 동해냐" 하는 명칭의 전투에서 이기는 듯했던 한국은 기실 실리(實利)를 잃고있다.

우리가 '동해' 명칭에 집착한 사이 일본은 '독도'를 건드렸다.

2000년 5월 일본정부는 새천년의 첫 외교청서에서 '일본령 다케시마'를 들먹였다.

독도는 '확실히' 일본땅이라는 것이다.

다시 일본은 지난 6월17일 한국의 독도유람선 취항에 대해 가당찮게도 운항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정부는 거부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5월21일 미국의 지도제작사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올가을 출간할 '아틀라스' 최신판의 독도에 다케시마(죽도)를 병기(倂記)하겠다고 결정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동해 병기에 대항한 일본의 조용한, 그러나 집요한 '맞불 로비'에 우리가 당한 것이다.

이러다간 대한해협까지 쓰시마해협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동문서답(東問西答)하고 있는 한국의 외교, 외교술이 답답하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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