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언어(言語)라고도 했던가. 종류도 많지. 참말이 있는가 하면 거짓말이 있고 농담이 있고 진담이 있지. 그뿐이랴. 칭찬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험담 또한 얼마나 많은가. 선인들은 이를 경계하여 숱한 충고의 말을 남겼고 그래서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했지.
해학과 익살의 기미는 없고 그저 조롱하고 비방하며 때로는 자신의 위치를 잊고 넘치는 언어로 우뚝 서려는 자세. 한마디로 그런 사람이 버젓이 세상을 흔들려 하다니. 입심으로 세상을 휘 감으려 하다니. 장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잘 짖는다고 해서 좋은 개가 아니며 말 잘한다고 해서 현인이 아니라고.
청와대 뒷산에 꿩 부부가 살았었지. 장끼는 나불대는 편이었고 까투리는 그러나 앞 뒤를 좀은 재는 편이었지. 어느 해 겨울. 웬 눈이 그렇게 퍼부었는지. 먹거리가 일찍 떨어졌지. 그러나 장끼는 그까짓 먹거리쯤이야 대수롭잖다는 듯 으스대기까지 하며 옆에 사는 쥐를 찾아갔지. "여보게, 고양이밥 쥐서방 있나?" 쥐는 고양이 밥이라는 말에 화가 솟구쳤지. "왜 그러우"하고 다소 긴장하며 퉁명스럽게 답한 뒤 문을 열자 장끼는 마치 먹거리를 맡겨 놓은 듯 태연하게 "콩 몇 알 얻으러 왔네"하는 게 아닌가. 쥐는 뭐라고 답했을까. 답이 뭔가. 콧방귀를 뀌며 문을 획 닫아 버렸지.
빈손으로 돌아온 장끼를 본 까투리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지.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까투리가 쥐를 찾아갔지. "쥐 생원님 계시우?"하고 문을 두드리자 화가 덜 풀린 얼굴의 쥐는 생원님이라는 말에 잠시 머쓱해지며 "조금전 임자네 바깓 양반말이 왜 고따우요? 내가 고양이 밥이면 당신네들은 매 밥이 아닌가벼?" 하며 기분이 풀려 콩 열 알을 쥐어 주었다지. 이렇듯 말은 하기 나름. 우리 속담에도 말을 둘러싸고 얼마나 좋은 말들이 많은가.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고. 건강에 좋다는 두부 말이다.
정말 덥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어떤 이열치열이 좋을까. 역시 좋은 것은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편한 자세로 열독에 빠지는 것. 실은 좀체 빠지기도 어렵지만 그러나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기도 어려운 게 독서열이 아닌가. 무협지, 탐정소설, 대하소설등 빠질만한 곳도 많다. 그러나 이런 책 어떨까.
'철학살이, 철학풀이' 민음사에서 펴냈다. 부산대 이왕주교수가 지었다. 철학이라는 이름이 제목에 두 겹 붙어 있어 손에 쥐기 전부터 어딘가 얼얼하게 다가오는 듯 싶지만 '살이'나 '풀이'라는 받침이 구미를 당기지 않는가. 그 어렵다는 철학. 그것을 어떻게 살이하고 풀이했길래 하는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앞글에서 필자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학이 본래 삶의 일인데 왜 그것이 오늘날 그리 창백한 모습으로 우리 관심에서 소슬하게 비껴서 있는가. 아마 철학이 순전히 학문의 소관사로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재에서 졸고 있는 철학도의 머리, 추상의 구름 위를 달리는 저술가의 붓끝은 결코 철학의 고향일 수는 없다. 풍진만장한 저잣거리의 삶이야말로 탈레스이래 바뀐 적 없는 철학의 영원한 토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철학을 학자들의 손아귀에서 빼앗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만하면 이 책의 용도(?) 아니면 진가라고나 할까, 또는 억지로 더운 여름에 선택한 이유로서 누가 되지 않을 변명은 될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늘 철학은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된다며 그것이 편안하게 가슴에 와 닿는 삶 이야기 일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간혹 주위로부터 큰 흐름에 비켜 간다거나 신변잡설로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늘 긴장하고 그 긴장 속에서 글쓰기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이야기다.
긴장. 이것 없이는 사는 맛이 있을까. 하물며 글쓰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긴장 없이 사는, 혹 긴장과 함께 산다고 해도 얼마나 그 긴장을 가볍게 여기며 마치 긴장을 한다는 게 갑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하는 패거리들이 있다는 게 문제다. 속된 표현으로 긴장을 아무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긴장은 세상을 업수이 여기며 긴장해서는 결코 진정한 긴장이랄 수 없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장끼와 까투리를 대하는 쥐의 긴장이면 진정 긴장일까. 아니면 높은 의자에서 법에 있는 것이 내 사상이고 내 사상이 곧 법(이건 아니겠지만)이라며 법대로 산다고 큰 소리치며 그 큰 소리 때문에 몇 년을 되레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높은 양반들의 긴장이 정말 긴장일까. 헷갈린다.
저자는 책 뒷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색은 통풍되어야 한다. 철학책은 읽혀야 하는 것이다. 고대 금석문에서 판독하듯 어렵게 읽어야 하는 철학책들은 이제 흔쾌히 조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정말 조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조소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어렵게 읽히는 철학책들 뿐인가. 콩알 얻으러 가는 장끼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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