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미스터리'는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1974년 겨울, 경북 경주시 안압지에 바닥 준설작업이 한창이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경주고도관광개발 10개년 개획의 일환으로 실시된 작업이었다.
신라 유물이 쏟아지자 작업이 중단된 뒤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여기서 나무로 만든 '남근 모조품'이 조사단의 눈길을 끌었다.
발기된 귀두에 콩알돌기까지 새긴 사실적인 모습이 경탄을 자아냈다.
1925년 여름, 을축년 대홍수가 한강변을 휩쓸었다.
한강이 범람했고, 강변에 접한 풍납토성의 서북쪽 장벽이 쓸려나가면서 토성 내부 일부가 드러났다.
일본인 아유카이는 토성 안에 살던 한 노인에게 유리옥 십여개를 샀고, 주변 유물을 근거로 이 토성을 백제 '하남위례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후 한성백제 500년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이 어디냐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끊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경기도 광주의 춘궁리, 경기도 하남 교산리, 서울 풍납동 인근 몽촌토성 등 의견이 분분했다.
1997년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현대아파트 재개발 부지에 들어가 '잃어버린 한성백제 500년의 역사'를 부활시켰다.
1975년 경주 황남동에서는 국내 고분발굴 사상 최장기간(2년4개월), 최대인원(3만3천여명)을 동원한 조사가 뤄졌다.
비단벌레를 잡아 그 날개 수천개를 장식해 무지갯빛처럼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비단벌레 장식 마구(馬具)'를 비롯해 금관 유리병 등 7만여점의 유물이 쏟아진 '황남대총'이다.
이 무덤의 관 안에서는 60세 전후의 남성, 관 밖에는 15세 전후 소녀의 이빨과 인골 조각이 나왔다.
저자는 무덤의 주인이 죽자 그가 사랑했던 비운의 어린 여성이 함께 묻혔을 것으로 추정했다.
혹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16세 소녀, '벽화(碧花)'를 애인으로 둔 신라 21대 소지왕의 무덤은 아닐까?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