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계절이 따로 있을까 마는 그래도 염천(炎天)이라야 우리의 정서로는 제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귀신 곡할 노릇들이 요즘 우리들 주위를 그렇게 산더미처럼 에워싸고 있는 것인가.
정치. 여전히 진흙밭이요 묵정밭이다.
정체성으로 버티면 과거사로 되받고, 무슨 큰 것이나 캐낼 듯이 청문회서 목청 돋우더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외교안보시스템의 총체적 부실로 결말을 내 버린다.
NLL사건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탈북자들은 무더기로 몰려오고 국가보안법은 존폐의 기로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도 수도이전은 해야하고.
경제.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 없는데도 확성기에다 대고 성장이다 분배다로 헛 고함 지르는 것이 서로가 쳐다보기 민망스럽다.
소비자들이 되레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은근히 윽박지르는 심사는 또 열 지갑이 없다는 사실에는 아예 고개를 돌리는 심뽀와 어쩌면 죽이 그렇게도 잘 맞는가.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도 말이다.
사회. 희대의 살인마 소동이 한 풀 채 꺾이기도 전에 경찰들이 당하는 으스스한 시대다.
귀신처럼 숨어 다니는 범인 때문에 주민들 모두가 전설의 고향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지금. 도대체 누굴 믿고 안전한 여름밤을 보내야 하는가. 가뜩이나 온갖 물 것들로 열대야를 이겨야 하는 서민들로는 이 여름은 정말 지긋지긋 할 수밖에 없다.
일신이 사자 하니 물 것 계워 못 견딜쇠 / 핏겨 같은 가랑니 보리 알 같은 수통니 주린 니 갓 깐 니 잔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는 놈 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아비 갈따귀 사마귀 센 바퀴 누른 바퀴 바구미 고자리 부리 뾰쪽한 모기 다리 길다란 모기 여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로기 주야로 빈 때없이 물거니 쏘거니 빨거니 뜯거니 심한 당비리 예서 어려워라 / 그 중에 차마 못 견딜손 유월 복더위에 쉬파린가 하노라
여름에 귀찮은 물 것들이 망라된 옛 사설시조 한 수다.
생각만 해도 지겨운 존재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도 더러 있고 잘 쓰이지 않는 용어도 있지만 사전 찾아가며 한 수 읽는 재미는 지겨운 여름 그나마 웃으며 보내기에 좋지 않을까 싶어 소개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물 것들 중 혹시 내가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자기존재에 대한 성찰쯤으로 여기면 해서다.
'조선의 귀신'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이 지은 책이다.
그는 지난 1929년. 이 땅을 강점했던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있으면서 펴낸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진 동기는 천하가 다 알 듯 식민지 정책을 세우기 위한 기초자료의 하나로 엮어진 것이지만 솔직히 우리가 못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것들도 있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다.
인터넷 시대에 웬 귀신 이야기냐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우리의 귀신들, 이건 숫제 민속적인 면에서 해석되는 것이기에 '우리'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귀신의 존재 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은 많은 부분에서 귀신을 신앙의 차원으로 이해하며 살아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시대마다 많은 선각자들, 혹은 선비들은 귀신에 따끔한 일침을 놓으며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귀신에 대한 민간 신앙은 오늘날에 까지 이어 오며 그 시대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대다수 역자들은 이 책이 그래도 넓은 의미에서의 한국학을 펼쳐 가는데, 또는 우리 민족의 정신사를 살펴 보는데 어느 한 편 자료로서는 충분히 되고 있다는 점에는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눈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지는 못한다.
하물며 식민통치의 자료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바에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래서 취사선택의 여지는 결국 읽는 이의 마음에 달릴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곳곳에는 잔인하리 만큼 아픈 대목을 고의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당시 우리의 민간신앙을 아주 저급하며 열등적으로 그린 부분이 많다.
이런 부분에서는 분하고 감정이 격해 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외세가 우리에게 던진 돌매질이며 그 돌매질을 이제는 충분히 소화해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으니 별 걱정은 되지 않을성 싶다.
눈 여겨 볼 것 중에는 많은 사진 자료와 부적의 형태등은 새삼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역사다.
비록 낯 선 눈으로 파악된 우리의 전통이지만 그 벽을 깨고 읽을 수 있어야 우리도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나설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지루한 여름 난데없는 귀신이야기라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귀신은 믿음이던 아니던 많은 사람들에게 결코 낯설지가 않는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어릴적 향수도 있고 서양식 도깨비에 길던 또 다른 세대에게는 일부나마 우리의 원형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능할 것 같다.
귀신 곡할 일들이 너무 많은 지금, 차라리 진정 귀신이 뭔가 이해 할 수만 있다면 실타래 같이 얽킨 난제를 해결하는데 그래도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귀신도 빌면 들어 준다는 속담에도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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