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군 선이골에 달랑 서 있는 외딴집 한채. 전깃불도 없고, 우체부도 찾지 않는 이 산골에서 부부와 그들의 다섯 아이가 살아간다.
김용희 씨 가족이 농사 짓고, 나물 캐고, 책 읽고,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온 지올해로 7년.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김씨는 가족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네 계절로 나눠 엮어 책으로 펴냈다.
사람내 물씬 풍기는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샨티펴냄)가 그것이다.
약국을 운영하던 김씨는 대학 강사인 남편과 가난을 택해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때는 IMF위기로 사회가 뒤숭숭하던 1998년 4월 18일. 이들 부부는 "당장 갑시다.
가서 살면서 어찌해 봅시다"라며 이름조차 생소한 선이골을 우연히 알고 살림을 간단히 챙겨든 채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이들은 한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농사를 지으며 산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다섯 아이를 줄줄이 낳아 키운다는 점도 별나다.
올해 8살인 막내 원목이부터 10살(화목), 11살(일목), 12살(주목), 15살(선목) 큰아이까지 엄마와 아빠의 손을 붙잡고 그냥 따라왔다.
아이들은 지금 한결같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도시의 삶으로 보면 이들 가족은 최소 40여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셈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지금처럼 무더운 한여름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켤 리 만무하고 냉장고는 물론 컴퓨터나 텔레비전, 세탁기, 게임기 등 가전제품이라곤 없다.
옷장이나 책상조차 들여놓질 않았으니 그들의 사는 방법을 쉽게 짐작할 수있다.
버리고 비우면 새롭게 채워지는 걸까. 김씨 가족은 아침을 함께 보내는 여유, 촛불까지 꺼버린 뒤 달빛과 별빛뿐인 어둠이 주는 깊은 휴식, 소음 없는 고요, 하늘이 차려주는 건강한 밥상 앞에서 풍요로움을 누리고있다.
김씨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필요에 넘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단 몇 권의 책과 공책, 연필 한 자루, 두 벌 옷과 한 짝의 신발, 이불 한 채로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넘치는 물건들 속에서 아이들이 어찌 검소와 나눔을 배우겠는가? 이곳에서조차 '가난의 풍요로움'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라 하겠지? 자연과 유리된 대도시에선 가난이 재앙이고 큰 불편이겠지만 이곳에선 가난은자유이며 축복이지."
이들의 하루는 온 가족이 돌아가며 사회를 맡는 아침맞이로 시작한다.
사회는 " 지금부터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월 ○일 아침맞이를 시작하겠습니다"라며 '행사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노래 부르고 기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공부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신라 말 최치원이 지었다는 '천부경'을 같이 읊는다.
아침맞이가 끝나면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 앞에 마주 앉는다.
식사는 하루에두 끼. 김씨는 "아침마다 온 가족이 새 날이 밝음을 고마워하고 그날의 하루 살림을위해 기도하며, 지구상에 있는 민족과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라고 책에 적고 있다.
출근하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 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은 밥 먹고 설거지를 한뒤부터 놀이와 일과 공부를 한다.
부모에게 직접 배우는 한글, 수학, 한자, 과학, 종교, 역사, 의학 등만이 공부가 아니다.
일하고 노는 것도 공부요, 밥 짓고 장작패고, 농사짓고 바느질하는 것 역시 공부이다.
책에서 본 동식물을 눈으로 확인하고사귀는 과정도 공부이며, 5일장에 가서 물건 사고 사람 만나는 여행 또한 공부란다.
이들 가족의 하루는 촛불 밑에서 일기를 쓰고 도란도란 둘러 앉아 책을 읽거나 옛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김씨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우리에게 고하는 노을빛 인사, 이제 그만 저녁 들기를 하라고 산골짜기에 불어오는바람의 춤과 솔새들의 지저귐, 서리 내리는 어둠과 이슬, 하나둘 나타나서 반짝이며인사하는 별들, 감청색 하늘에 드러나는 산등성이의 선, 따뜻한 방, 어둠 중에 빛나는 촛불, 하늘의 품에 안겨 꾸는 꿈……. 이런 것들은 전기가 없음으로해서 누릴수 있는 축복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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