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훈군은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열세살(포철중1년)이다.
사람이 떠맡기엔 위험하고 힘든 일을 대신해줄 로봇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한국우주정보소년단 지능로봇대회 대상, 전국 창작지능로봇대회 장려상, 모형항공기대회 금상, 학생 과학탐구올림픽 금상, 한국과학영재 올림피아드 장려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팀 올림피아드 선발과 교육 수료…. 동훈이는 이미 미래의 로봇공학자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은 얼굴에 좀 커 보이는 안경, 그 너머 큼직한 눈동자에 푸른 꿈이 넘실대는 동훈이를 만났다.
◇ "내 관심분야 찾아내 집중"
동훈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톱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길렀다.
또래 아이들처럼 재미로만 기른 게 아니다.
알의 부화부터 성장·번식과 죽음까지 꼼꼼히 곤충일기를 썼다.
이 작은 생명체가 환경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성장과정과 활동을 꼼꼼히 기록했다.
사진으로 나타내기 힘든 부분은 그림으로 대신했다.
그림의 상세함이 곤충백과사전을 뺨친다.
로봇과 곤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동훈이는 "둘 다 살아있는 존재다.
이 생명체들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잘못된 환경을 만들면 곤충은 죽는다.
엉뚱하게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
자신의 노력과 의도에 따라 길러진다는 점에서 로봇과 곤충은 닮았다.
동훈이는 이 과정을 통해 로봇 발명이 결국 자신과 싸움이라는 것도 배웠다.
동훈이의 취미이자 휴식은 독서. 관심은 온통 로봇과 곤충에 집중돼 있지만, 독서는 생물 로봇 문학 등 분야의 구분이 없다.
동훈이에게 독서는 휴식이자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광맥이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끼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된 듯 제몫의 인터뷰가 끝나고 어머니와 취재팀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뚝 떨어져 앉더니 책을 펼쳤다.
동훈이의 가장 큰 장점은 집중력. 초등학생 때 이미 하루 12시간 이상 로봇작업에 매달릴 만큼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기대보다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관찰일기, 로봇 프로그래밍 안을 내놓는다.
동훈이는 부모나 교사의 의도에 따라 길러진 영재는 아니다.
경시대회를 목적으로 로봇을 만든 것도, 관찰일기를 써온 것도 아니다.
부모의 도움으로 자신의 관심분야와 재능을 발견했고 거기에 몰두해왔을 뿐이다.
이런 동훈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연스럽게 담임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로봇을 비롯한 과학분야 전문가였던 담임 선생님의 지도를 받자 아이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과학 특성화학교인 포철동초등학교 재학시절 전교 600명 중 20명을 뽑는 영재학급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의 각종 과학경시대회를 휩쓴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였다.
◇ "입시에 짓눌린 아이 안쓰러워"
어머니 박훈숙씨는 동훈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걱정이 늘었다.
초등학생 동훈이를 위해 거실에 '재능상자'를 펴주던 엄마였다.
그러나 중학생이 된 아들을 보며 "이제 '재능상자'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집 아이들이 학원에서 새벽 1, 2시까지 공부할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한두 번 시험을 치르면서 엄마의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돌아서면 시험입니다.
특히 포항은 고교입시 부담이 타지역보다 훨씬 커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입시체제로 돌입합니다.
" 아이의 재능을 살리자니 입시가 걱정이고, 입시에 집중하자니 재능을 꺾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경시대회가 있지만 출전기회를 얻기도 힘들고, 그나마 대회도 1주일 혹은 2주일 전에 후닥닥 준비해서 출전합니다.
입시 부담 없이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엄마는 방학숙제만이라도 학교에서 주제를 제한하지 말고 학생 각자가 관심분야에서 스스로 과제를 찾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학생이 된 후 아이가 풀이 죽었습니다.
학교 공부도 전처럼 잘 하지 못하고요. 로봇에 몰두할 기회가 없으니 학교 공부마저 시들해지는 모양입니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가 로봇에 전념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너무 빨리 입시생의 엄마가 돼버린 그는 동훈이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동훈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안동대학교 영재교육원으로 아이를 태워주고 태워오는 것뿐이라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거대한 교육제도 앞에 개인인 부모는 무기력해 보였다.
중학생활 3년만 참으면 과학고 등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게 엄마에겐 유일한 위안이었다.
◇ "자녀를 학교.학원에 가두지 말라"
김헌수 교사(포철동초교)는 초등학교 때 동훈이를 지도한 교사다.
그는 초등학생의 재능개발은 상당 부분 어른들 몫이라고 말한다.
동훈이처럼 뛰어난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재능은 잠재된 채 묻히고 만다는 게 경험에서 나온 그의 판단이다.
"과학퍼포먼스나 거리축제 등을 열고 나면 꼭 학생 몇몇이 찾아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일부러 공연 주최측을 찾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과학에 상당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죠."
김 교사는 "자녀에게 박물관·미술관·과학 거리퍼포먼스 등 무엇이든 자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대개 자녀가 서너 살 땐 천재 혹은 영재가 아닐까 호들갑을 떨다가도 막상 창의성을 길러줘야 할 때가 되면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에 내던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녀의 창의성 발달에 로봇 창작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길찾기 로봇을 만들 때는 속도와 방향 인식에 관한 프로그래밍이 중요합니다.
외형도 중요합니다.
특히 길찾기 로봇은 곡선부위를 잘 처리해야 막다른 길에 부딪혀도 잘 빠져나올 수 있지요. 이에 반해 씨름로봇은 곡선처리보다 상대를 잘 밀어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로봇은 그 용도에 따라 프로그래밍과 외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창의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
로봇관련 창의성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는 아직 극소수. 김 교사는 로봇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로봇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했다.
△창작지능로봇(www.icira.org)△로봇올림피아드(www.krsa.org/olympiad)△청소년로봇과학교실(www.robotcamp.net)
글·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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