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한 조선 군영을 방문해 벌채 작업 중인 왜병 포로들을 만났다.
포로들은 등과 가슴은 물론이고 얼굴에도 채찍자국이 선명했다.
△ 몇 살이며 조선 땅엔 언제 왔는가?
-서른 일곱 살이다.
작년(1592년) 4월, 구로다 대장이 이끄는 제3번대 소속으로 김해에 상륙했다
△ 자원병이었나 징병이었나?
-자원도 징병도 아니다.
일본에서도 여러 번 전투에 참가했다.
부대를 따라 다니다보니 조선에 오게됐다.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부모님과 처자식들은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제도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포로 2명이 통나무에 깔려 죽었다.
△ 조선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가?
-닥치는 대로 조총을 쏘았다.
죽은 조선인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이기도 했다.
본국에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병사든 민간인이든 가리지 않고 죽여 코를 베었다.
△ 후회하지 않는가?
-모르겠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일본에서나 조선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전투가 시작되면 상대는 적일 뿐이다.
내가 죽인 사람에게 악의는 없었다.
△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나는 살고 싶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사무라이 휘하에 들어갔을 뿐이다.
내 땅을 마련해 농사를 짓는 게 꿈이었다.
살아서 처자식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가족 이야기를 하며 포로는 울었다.
옆에 앉아 있던 늙은 포로도 울었다.
포로들의 울음은 이미 잔악한 왜병의 울음이 아니었다.
포로들은 어린 자식을 둔 아버지로, 늙은 부모를 둔 아들로 울었다.
조선군관이 달려와 우는 포로들을 가죽채찍으로 후려쳤다.
군관을 탓할 수는 없었다.
전쟁은 이미 인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듯 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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