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있다.
억센 두 팔로 봄 아가씨를 밀어내면서 화사한 봄꽃을 밟으며 성큼 다가서던 여름이 벌써 힘을 잃었다.
열대야 더위에 시달리게 하고 등뒤에 태풍을 감추고 있어 때로는 위협했지만 여름의 열정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아쉬울 것이다.
여름은 워즈워드가 위대하다고 노래하지 않았어도 언제나 빛난다는 사실을 시골 와서 살면서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풀잎에 총총 맺혀 반짝이는 이슬은 보석보다 눈부시어 세상 물질을 무색하게 했다.
한낮, 들에서 여무는 곡식과 익어 가는 과일의 내음은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금방 쪼갠 수박을 한입 물었을 때 입속 가득 배는 달디단 맛은 구슬땀마저 은혜로 받아들이는 구원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그림보다 아름다운 노을을 밟고 걸음을 옮겼다.
장밋빛 붉은 빛은 너무 무거워 하늘을 물들이고 또 길 위에 떨어져 발을 적셨다.
그러면 발자국마다 화폭이 되어 명화(名畵)로 살아나고 시어(詩語)들이 쏟아져 노래가 되었다.
반짝이는 별을 볼 때면 여름밤이 지휘하는 교향곡이 있어 별빛은 더욱 초롱거렸고 인간이 만든 소리는 모두 침묵하는 듯했다.
도시의 여름은 거리에서 찌들었지만 산골의 여름은 들에서 영글었다.
그러나 벌써 멍든 나뭇잎이 떨어진다.
가을이, 위대했던 계절의 손등을 꼬집으며 재촉하나보다.
하지만 떠나야 함은 곧 돌아옴의 약속이니 서운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젊음도 떠나보내는데 여름은 한 해만 기다리면 또 만나지 않는가.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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