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중소도시 경기가 최악이다.
불황의 터널이 끝간 데 없이 이어지면서 경북북부지역 각 시·군의 유명상가와 시장, 관광지가 휘청거리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도 겹고통이다.
그렇다고 묘안도 없다.
취약한 경제기반과 구조로 자생력이 없는 데다 해결의 실마리가 될 나라 경제도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치고 주눅든 민심은 명절 앞에서 더욱 절망하고 있다.
21일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예천읍내 거리는 인적이 끊기다시피해 을씨년스럽기만하다.
추석명절을 앞둔 때여서 적어도 상가지역에서만은 반짝 성시라도 있을 법한데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백열등을 켜두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동본리 상설 재래시장가의 과일 좌판행상 할머니의 얼굴에는 낙담과 허망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예천읍내에서 노른자위 상권이라는 노하리 일대의 상가는 점포를 얻지 못해 안달하던 상인들이 즐비했던 수년 전과는 달리 곳곳이 비어 있다.
추석대목에도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적지 않다.
이 지경에 빠지자 이곳 점포 세입자들이 최근 건물주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다.
건물주는 20여년 간 상가임대를 해온 이래, 외환위기때도 없었던 일이었지만 절박한 상황임을 이해하고 임대료를 최고 50%까지 내려줬다.
건물주 박모(44)씨는 "임대료를 내렸지만 그조차 제때 못 내는 세입자가 있어 딱하고 암담한 심정일 뿐"이라며 혀를 찼다.
2000년 초반부터 자고 일어나 보면 대형상가건물과 아파트, 음식점 유흥업소가 들어서 불황 예외지역이라던 안동 옥동 신시가지도 비틀거리고 있다.
장기불황에 반짝경기가 꺼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그나마 재미를 본다는 상인들은 일부.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면서 임대료를 못 내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여파로 많은 빚을 내 건물을 지은 건물주들이 금융비용을 감당치 못하고 잇따라 부도를 내고 있다.
지은 지 불과 2, 3년밖에 않된 20여개의 건물이 경매물건으로 나왔다.
부동산중개사 정모(43)씨는 "이곳 건물주 상당수가 빚으로 인해 사실상 소유권을 상실했고 실제 주인은 대출해준 금융기관" 이라고 말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화오거리까지 주간선도로변의 상가건물 2층 대부분과 최근 새롭게 단장된 안동 신시장 내 상가도 예외없이 20여개 이상이 임대되지 못해 셔터가 내려져 있을 정도로 골목경기는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동시가 전통 양식으로 꾸며둔 시내 음식의 거리(먹자골목)에서조차 몇 달째 상가임대를 기다리는 건물주도 적지않아 바닥으로 추락한 지역상권 경기를 대변하고 있다.
이 같은 지역 경기침체는 최근 추석을 앞두고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않아 매기가 끊어진 상인들을 망연자실케 하고 있다.
그동안 불황을 모를 정도로 매년 추석 등 명절 매출이 늘어나 분주하게 보냈던 안동간고등어 업계도 추석이 임박한 최근 들어서도 판매량이 늘지 않자 경악하고 있다.
(주)안동간고등어 조일호 이사는 "지난해에 비해 추석 명절 매출이 60% 가량이나 급격하게 줄어 들었다"며 "원인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의성지역의 경기를 가늠하는 의성읍 중앙통. 대부분의 상가들은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게 한결 같은 목소리다.
추석을 눈앞에 두고 읍내에서는 그런 대로 장사가 잘 된다던 한 브렌드 의류가게가 개점휴업 상태일 정도.
이 가게 주인은 "지난해만 하더라도 추석을 앞두고 상품권 매출이 적잖았으나 올해는 22일 현재 단 한 장도 팔지 못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안계 5일장인 21일 오전 10시. 추석을 일주일 앞둔 대목장이었지만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평소 5일장과 다름 없었다.
20년째 과일상회를 하는 김모(52·여)씨는 "올해 추석 대목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대목장이 오히려 평일보다 못하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그래도 26일 대목장이 한 번 남았으니…"라며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군위읍 중앙통.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경기는 의성읍이나 별다를 게 없었다.
추석 경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상가 주인들은 "군위읍 대부분의 공직자들과 직장인들이 대구에서 출퇴근 하고 있어 밤이면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 군위읍의 상가인데 추석이라고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추석 경기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였다.
22일 오후 영주시 휴천동 번개시장. 이맘때면 당연히 분주하고 소란스러워야 할 텐데 200m 늘어선 시장통은 한산하기만 하다.
제수용품점, 떡방아간, 식육점, 채소전, 어물전… 어디 한 곳 붐비는 곳이 없다.
어물전 주인 김모(48)씨는 "비가림시설에 입간판까지 설치하고 제대로 장사 한번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다져도 손님이 와야 장사를 해먹지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성희(43·영주시 휴천동) 주부는 "2,3년 전만 해도 제수를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워낙 어렵다보니 조금씩 흉내만 내고 있어 조상들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어려운 것은 재래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설업을 하는 김모(42· 봉화군 내성리)씨는 "일거리가 없어 직원들 임금, 추석 보너스 줄 형편이 안된다" 며 "사장 얼굴만 쳐다보는 직원들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태풍이 와서 좀 쓸어 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겠냐"며 "요즘 같으면 하루하루 사는 게 지옥"이라고 말했다.
청송읍 부곡리 달기 약수탕 위락지. 지난해까지 43개의 음식점이 영업을 했으나 올들어 3개소가 문을 닫았다.
적자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서인지 관광객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진동(54)씨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떨어졌다" 며 "손님을 모으기 위해 주변 식당주인들이 친절은 기본으로, 최상품 재료와 한약재를 섞어 닭백숙을 만들어 내지만 헛고생만 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주변 기념품가게는 더하다.
등산객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둘러보다 나갈 때는 1천원 정도 하는 목걸이나 열쇠고리를 사는 것이 고작이다.
상황이 이 같은데도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가슴을 더욱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김성호(43·안동시 용상동)씨는 이 지역 경제기반이 농업소득과 봉급생활자의 급료로 지탱되는 매우 허약한 것이어서 불황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청송·김경돈기자 의성·이희대기자 영주·마경대기자
사진 :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영주 휴천동 재래시장. 한창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손님의 발걸음이 끊어져 한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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