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가을 길목에 서 있다.
해질녁 필자의 산방에서 산을 바라보면 외로움마저 느껴지는 스산한 계절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의 정겨움, 곧장 뱉어낼 것처럼 활짝 벌어진 알밤들이 성큼 다가온 가을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의 낮잠 문화가 눈에 띄었다.
베트남인들은 새벽 4, 5시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오전 11시가 되면 점심식사하는 것이 생활습관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중심가의 상점이나 마을 구멍가게, 약방, 병원 등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문을 굳게 잠그고 낮잠을 즐긴다.
씨클로를 모는 기사도 낮잠시간에는 손님을 외면한채 담벼락 그늘을 의지하여 코를 골며 낮잠에 빠져 있다.
공사장 인부들도 낮잠시간이 되면 어디든 빈 공간을 차지하여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를 막론하고 그늘이 있는 곳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큰대자로 몸을 펼치고 누워있다.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근무시간은 일정하지만 그들도 점심시간이 되면 교대근무를 하면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누워서 낮잠을 즐긴다.
베트남인들은 식사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가정을 비롯해 모든 일터에서는 외식문화가 성행한다.
더운 열대기후의 원인도 있지만 가정주부들이 대체적으로 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 이면에는 특별한 행동을 개시하기 위해 낮잠을 외면하는 예외도 있다.
좀도둑, 오토바이 날치기범들은 낮잠시간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클럽활동에 참여해야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여행객들은 낮잠문화에 익숙해 있지 않아 이 시간에도 관광을 즐긴다.
이들 도둑들은 외국인 투숙객이 묵고 있는 미니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여러 날 동안 집중 감시하다가 기회를 포착하면 순간적으로 해치우는 습성이 있다.
특히 오토바이 날치기들은 보행자나 씨클로를 타고 가는 외국 관광객의 소지품이나 카메라를 날치기하는 전문가들이다.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베트남 아낙이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맨 카메라 가방을 흔들면서 어깨에 걸지 말고 목과 어깨로 걸쳐 매라며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몸짓 시늉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문득 '카메라 가방을 노리는 오토바이 날치기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긴장되었다.
창문이 열린 자동차나 버스에서도 능숙하게 여행객의 귀중품을 잽싸게 집어들고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는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어오니 온 몸이 땀으로 목욕한터라 출입문을 잠그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한 김에 샤워를 하고 옷을 벗어 이층으로 올라가는 난간에 걸어둔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익숙하지 않은 낮잠을 즐기려는 순간 출입문 여는 소리가 났지만 집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어서 옆집에서 나는 소리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돈이 두둑히 든 지갑과 카메라, 시계가 제 발로 달아나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 어쩔 줄을 몰랐다.
이웃집 좀도둑이 틀림없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동안 나를 노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집주인이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지만 헛일이었다.
냉가슴만 앓고 단속 못한 나 자신의 자책으로 마음을 달랠 뿐이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벽을 뚫고서라도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베트남 좀도둑을 직접 경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 계명대 교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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