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청산리대첩 개전

1920년 10월 20일 새벽 만주의 허룽(和龍)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 대한독립군 북로군정서 제2제대(중대)장 이범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이를 신호로 백운평 일대에 매복 중이던 600명의 독립군은 5천명이 훨씬 넘는 일본군 동지대(東支隊)와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항일투쟁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전과인 청산리대첩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였다.

전위대 500여명 사살 뒤 몰려오는 적의 주병력을 맞아 독립군은 이범석 장군의 '두 총구가 조국의 눈이다'라는 독려에 힘입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워 2천200명의 적 병력을 궤멸시켰다. 독립군의 피해는 겨우 사상자 20여명. 세계 전사상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과였다.

타격을 받은 일본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이에 독립군은 주력 부대가 그대로 백운평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밤새 120리를 강행군해 갑산촌(甲山村)에 도착함으로써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이어 아군은 천수평(泉水坪), 마록구(馬鹿溝) 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만 2주야에 걸친 혈전에서 2천명의 독립군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5천의 적군 중 1천여 명을 전사시켰다. 5만 병력을 2천500명으로 맞아 3천300명을 죽인 청산리 3차의 싸움은 한국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대첩(大捷)으로 독립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한민족의 불굴의 항일정신이 빚어낸 자랑할 만한 결과이다.

▲1903년 미국과 캐나다, 알래스카지역 국경 확정 ▲1948년 여'순 반란사건 발생 ▲1973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개관 ▲1986년 카드식 공중전화 운용 시작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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