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선비정신

우리는 지난날 시(詩)로 높은 정신문화를 향유했으며, '선비정신'을 숭상했다. 국어사전에는 '선비'를 '학식은 있으나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풍류정신에 뿌리를 둔 '선비정신'은 격이 높다.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높은 정신세계에서 물질을 탐하지 않으며, 권세에 연연하지 않고, 양심과 지조를 지키며, 가난해도 체면을 알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줄 아는 '고고한 정신'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느 틈에 그 높은 '가치'를 잃고 있는 건 아닐는지….

◇ 어쩌면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가 하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물질을 더욱 탐하는 세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는 널리 퍼져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양심과 체면까지 팽개쳐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해 인간의 존엄성마저 땅에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 영주의 선비촌이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성급하게 낙관할 일은 아니지만, 개촌 한 달 만인 지금까지 입장객의 80% 정도가 타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입장객은 평일 2천500~3천명, 주말 5천~6천명 선으로 아직 홍보가 부족한 점을 감안한다면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 조선 시대의 선비와 상민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이 선비촌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난 9월 22일 문을 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기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11월부터는 훈장을 초빙, 서당을 운영하고 예절교실과 다도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어서 기대된다.

◇ 아무튼 선비촌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서로 욕하면서 잘된 건 '내 탓이오', 못된 건 '남의 탓'인 세태, '제 얼굴에 침 뱉기'식의 공방들만 만발하는 이 시대에 선비정신을 기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랴. 요즘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구한 윤동주의 '서시'나 조지훈의 '지조론'이 더욱 우러러 보이기만 한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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